[취재수첩] 어느 카스테라 자영업자의 눈물

입력 2017-03-21 17:37
수정 2017-05-04 16:57
배정철 생활경제부 기자 bjc@hankyung.com


경기 군포에 사는 유모씨(45)는 지난 9일 ‘대왕카스테라’ 가게를 열었다. 창업을 위해 1억원 넘게 대출을 받았다. 처음엔 하루 120만원어치 정도 팔았다. 하지만 지난 12일 종합편성방송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이 대만식 대왕카스테라를 식용유 범벅 불량 빵으로 고발하면서 매출이 5분의 1로 줄었다. 대왕카스테라에 관한 기사가 나가자 유씨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폐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도 방송 때문에 문닫게 생겼다는 자영업자들을 여럿 만났다.

‘먹거리 X파일’은 우유와 계란만 들어갔다고 홍보한 대왕카스테라 업체가 사실은 식용유와 유화제를 넣어 판매했다고 비판했다. 허위 과장광고는 비난받을 만했다. 하지만 다루는 방식이 너무 거칠었다. 고발된 업체는 익명 처리돼 나갔고, 다수 업체가 다량의 식용유와 첨가제를 사용한다는 자막이 나갔다. 대부분이 부도덕한 업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방송 후 대만식 대왕카스테라는 원래 식용유를 써서 만든다는 전문가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피해는 모든 대왕카스테라 판매업자들로 번졌다. 유씨에 따르면 ‘먹거리 X파일’은 오는 26일 15분 정도 ‘착한 카스테라’라는 내용으로 추가 보도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비자 신뢰를 회복시키긴 쉽지 않아 보인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정보와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향력이 큰 만큼 신중해야 한다.

2013년엔 합성조미료(MSG), 2015년엔 벌집아이스크림 논란이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밝힌 MSG는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 속에 ‘나쁜 조미료’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다. 조미료를 쓰지 않은 식당을 ‘착한 식당’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벌집아이스크림도 파라핀 첨가 업체가 익명으로 처리되는 바람에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아야 했다. 대왕카스테라 업주들은 매장 앞에 ‘정직하게 만들겠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양심껏 빵을 만들어 파는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지나.

배정철 생활경제부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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