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한 '아모레퍼시픽의 뷰티로드'
매출액 20% 이상 해외서 성과
세계 뷰티기업 12위 원동력은 책
중국 사업 안풀린 땐 책 읽으며 전략 짜
소통이 곧 '매직'
직원들도 자유롭게 "서경배님"
조직문화 혁신하니 히트작 나와
20년 만에 수출 181배·영업익 1조
[ 이수빈 기자 ]
“국민적 붐을 일으키는 상품을 개발하겠다.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매출의 20%를 해외에서 내겠다. 기술과 마케팅에 투자하겠다.”
1997년 3월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 대표로 취임하면서 이렇게 약속했다. 당시 34세였다. 이를 통해 랑콤, 에스티로더 같은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올해 취임 20년을 맞는 서 회장은 이 약속을 모두 지켰다. 그는 책, 예술, 아버지, 기업문화, 중국 등을 약속을 지킨 비결로 꼽는다.
◆세 가지 약속을 지키다
2008년 그는 국민적 붐을 일으키는 상품을 내놨다. 쿠션 파운데이션은 ‘쿠션 붐’을 만들어냈다. 국내뿐 아니었다. 세계에서 1초에 한 개씩 팔렸다. 매출 20%를 해외에서 올리겠다는 약속은 2015년부터 지키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과감한 기술과 마케팅 투자였다. 세 번째 약속이었다. 아모레는 국내 최고의 마케팅 공모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경배 재단을 설립해 기초과학 연구를 후원하고 있다. 그 결과 아모레퍼시픽 매출은 20년 전 6000억원대에서 지난해 6조원대로 올라섰다. 글로벌 뷰티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도 달성했다. 작년 미국 패션뷰티 전문 매체인 WWD가 선정한 세계 100대 뷰티기업 순위에서 아모레가 12위에 올랐다. 대표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은 미국 백화점 1층에서 해외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책과 예술에서 아이디어
서 회장은 책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책 속에는 기업경영뿐 아니라 인생 철학 등 모든 답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중국 사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그는 중국 역사책을 읽으며 전략을 짰다. 책을 그냥 보지 않는다. 해마다 책을 40권 이상 읽는다는 그는 독서할 때 책 내용을 한쪽에 요약 정리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할 목록을 작성한다. “서 회장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경영의 무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임직원이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책을 선물한다. 중국 사업을 맡은 임원에게 《덩샤오핑 평전》을, 신입사원에겐 《어댑트》를 읽어보라고 권하는 식이다.
예술은 서 회장에게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다. 그는 “기업을 하지 않았으면 미술 평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웬만한 클래식은 작곡가와 제목을 다 알아듣는다. 한국의 미와 예술을 알리면 한국 화장품 가치가 높아진다는 생각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는 문화예술 마케팅으로 설화수를 성공시켰다. 설화수는 2009년부터 매년 ‘설화문화전’을 여는 등 예술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면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굳혔다. 이는 “화장품은 문화상품”이라는 지론으로 이어졌다. 품질은 기본이고 문화적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소통으로 혁신 앞당겨
그는 창조와 소통을 중시한다. 예술은 창조의 원천이었다. 소통을 가능케 하기 위해 그는 환경을 바꿔갔다. 호칭이 대표적이다. 아모레퍼시픽 직원들은 그를 ‘서경배 님’이라고 부른다. 서 회장도 직원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 2002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은 직급을 없앴다.
서 회장은 말단 사원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신입직원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기도 했다. 2006년에는 프랑스 조직문화 컨설팅 업체에 아모레퍼시픽의 수평적 기업문화를 의뢰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쿠션 파운데이션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자유로운 의사소통 덕분이라는 평가다. 쿠션은 한 연구원이 주차장 스탬프에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대박상품이 됐다. 연구소를 지을 때는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건축가가 있는 포르투갈을 몇 번 방문하기도 했다.
◆선대 회장 뜻 이어받아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서 회장은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말 태평양그룹 구조조정 당시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하겠다”는 아버지인 서성환 창업자의 얘기를 떠올렸다. 화장품에 집중했다. 미리 덩치를 줄여놓은 태평양은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았다.
올해 서 회장은 ‘원대한 기업’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2025년까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 되겠다는 내용이다. 올해는 가장 인기가 높은 5대 브랜드(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해외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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