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제 살리고 기업을 뛰게 하는 '재벌 개혁' 하라
해외공장 유턴 지원에도 특혜라고 비난…삼성전자 같은 기업 키울 공약 왜 없나?
회사 키우려는 열망 장려하는 풍토 돼야…기업인도 특혜 바라지 말고 경영 전념을
[ 강현우 기자 ]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은 이른바 ‘착한 기업’의 대명사다. 일제 시대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지금도 장학사업 등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으며 ‘문어발식 확장’도 하지 않는다. 유한양행의 국내 고용 인원은 1629명(2016년 9월 말 기준)이다.
삼성전자는 1969년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출자를 통해 창립됐다.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지만 ‘탐욕스러운 대기업’이란 이미지에 휩쓸려 버리기 일쑤다. 총수 일가가 5% 남짓 지분만으로 경영권을 휘두른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국내 고용은 9만5374명이다. 유한양행의 58.5배다.
유한양행과 삼성전자 중 어느 기업이 더 좋은 기업인지 판단하긴 어렵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국가 경제에 더 많이 기여하는 기업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현재 유력한 대통령선거 후보 가운데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하나 더 나오도록 하는 정책을 말하는 이를 찾아보긴 힘들다. 오히려 대기업 규제 강화가 바르고 선한 길이라는 주장만 쏟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네거티브 규제로 개혁하라
전문가들은 미국 일본 등 경쟁 국가들이 일제히 규제 개혁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만 유독 대기업 때리기를 강화하면 국제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규제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정도의 핵심 규제만 남기고 모두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60~1980년대 ‘한강의 기적’은 정부가 기업 규제보다는 육성에 집중했기에 가능했다”며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반기업 정서를 조장하면서 규제가 급속도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윤 전 부회장은 “국내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는데도 대기업이 해외 공장을 국내에 유턴시킬 때 지원해주려고 하면 당장 ‘특혜’라는 주장이 나온다”며 “이런 환경에서 어떤 기업인이 국내에 투자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수천, 수만개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것 빼고 다 안 된다’는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으로는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것 빼고는 다 된다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국내 경영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져 기업들의 해외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 발전과 기술 변화 속도에 맞는 발빠른 규제환경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7~2016년 10년간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는 3780억달러(약 434조원)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1525억달러·약 175조원)의 2.5배에 이른다.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는 이른바 ‘착한 기업’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자연에서 야수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듯 기업인이 기업을 키우겠다는 열망을 장려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너는 기업 키우는 데 전념해야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정치 권력의 제한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벌 개혁 논의의 단초가 된 정경유착의 원인은 기업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의 관치 경제에 있다”며 “정부가 각종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있고 정치권은 언제든 권력으로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돈을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은 “상법 개정 등으로 외국 투기자본에 경영권을 내줄 것이 아니라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 선진국처럼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대주주 주식엔 의결권을 더 주는 것) 등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면 기업이 마음 놓고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할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미리 부여하는 제도다.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대기업집단의 풍부한 자금과 기술력 등 장점은 살리면서 오너 경영의 폐해 등을 철저히 감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 오너 경영자의 책임의식도 필요하다는 제언이 많았다. 이 교수는 “일부 대기업 오너 3, 4세의 일탈 행위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며 “오너 경영자들이 특권의식을 버리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전념해야 국민도 기업인을 존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우/김순신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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