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1년]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주도?…컨트롤 타워 고집 버려야"

입력 2017-03-13 16:09
전문가, 4차 산업혁명 대선주자 공약 분석


[ 이호기 기자 ]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이 차기 대통령선거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주요 대선주자의 관련 공약은 여전히 개발 독재 시대 낡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동력이 민간의 자율과 창의에서 나오는 만큼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감한 규제 완화로 혁신 생태계가 스스로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컨트롤타워 집착 버려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초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의 주최로 열린 ‘4차 산업혁명, 새로운 성장의 활주로’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존 중소기업청에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 업무까지 맡겨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승격한다는 방침이다.

과학기술 정책 분야에서도 노무현 정부 당시 과학기술부(부총리급)처럼 예산권을 가진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성장과 관련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상징 격인 미래창조과학부를 해체한 뒤 국가 연구개발(R&D) 정책을 총괄하는 ‘과학기술지능부’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주도하는 ‘정보혁신부’를 신설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결국 노무현 정부 때처럼 과학기술부 및 정부통신부 체제로 되돌아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처가 합쳐졌다 흩어지는 걸 반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와 관련해서도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에 힘입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옛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 든다”며 “그보다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약하는 각종 정부 규제를 철폐해 자생적인 혁신 생태계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시안적인 인재 육성 대책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지난 7일 보도자료를 내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인재 1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과학기술·창업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안 전 대표는 “AI IoT 빅데이터 3D프린팅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전문 인력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며 “청년 및 중장년을 교육시켜 10만명의 전문가를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청년 취준생(취업준비생)과 중장년 실직자를 대상으로 1년가량의 교육 및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구체적인 복안도 내놨다. 교육 장소는 정부출연연구소 및 참여 대학에서 마련하고, 연 2만명씩 5년간 총 10만명을 교육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학생에게 지급되는 월 50만원을 포함해 소요 예산은 5년간 총 6000억원가량으로 추산했다. 안 전 대표는 이와 함께 △노후된 산업단지를 리모델링해 규제가 없는 ‘창업드림랜드(스타트업 특구)’ 조성 △정부 주도의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민간 주도로 전환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격상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한 인터넷 포털 관계자는 “국내 대표 벤처기업인 출신답게 현상 진단이나 해법이 상대적으로 다른 대선 주자와 비교해 돋보이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AI 인재 양성이 단 1년간의 재교육만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초·중·고 교육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과목을 강화하는 등 보다 장기적인 접근법이 아쉽다”고 했다.

◆정책 구체성 결여 비판도

안희정 충남지사는 △원칙 있는 규제 혁신 △연구개발(R&D) 생태계의 창조 기반 조성 △창조적 인재 육성 체제 구축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조선 시대 이래로 600년 동안 지속돼 온 국·영·수와 고시 중심의 교육체제로는 4차 산업혁명의 가장 근간이 되는 창의적인 인적자원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인프라 구축과 같은 ‘마중물’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론만 제시했을 뿐 구체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4차 산업혁명 자체보다 일자리 감소 등 사회적 변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대응 위원회’를 구성해 차기 대통령 임기 6개월 내 기본계획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대선주자들이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각론은 미흡한 것 같다”며 “국회에서 ‘규제프리존법안’ 하나도 제대로 처리가 안 되는 이유부터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