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저 복귀 뒤 "반드시 진실 밝혀질 것"
"모든 결과 안고 가겠다" 수용의사 밝혔지만
검찰 수사·지지자 결집 겨냥한 입장 분석도
청와대 출발 전 녹지원서 직원 500여명과 작별
[ 장진모 기자 ]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후 ‘무거운 침묵’을 지켰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에 대해 불복을 시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12일 자택에 도착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을 만나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투쟁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16분께 청와대를 떠나 7시37분에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복귀했다. 헌재가 대통령직 파면 선고를 내린 지 이틀 만이다. 201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 이후 1476일 만에 사저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은 자택에 도착한 직후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네 문장의 짧은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았다. 박 전 대통령은 “저를 믿고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고 민 의원이 전했다.
◆박 전 대통령, 속으론 ‘불복’
박 전 대통령이 민 의원을 통해 밝힌 대국민 메시지는 본인의 착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선 정치권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입장이 헌재의 파면 결정 사유에 대해 마음 속으로 승복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는 점에서다.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도 “말씀 그대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헌재의 파면 선고를 공식적으로 승복하기도 쉽지 않다. 이 경우 헌재가 적시한 파면 사유, 즉 최씨의 사익을 위한 권한남용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사라져 검찰의 강제 소환 조사는 물론 구속까지 감수해야 하는 벼랑 끝 위기상황이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은 향후 검찰 수사 및 형사 재판 과정에서 강력한 법적 투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검찰 수사에 대비하면서도 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둔 상황에서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불승복’ 의사를 내비쳤지만 겉으로는 헌재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함께 밝혔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밝힌 대목에서다.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사유로 지적된 권한남용 등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향후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지만 법치주의 관점에서 헌재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 것 같다”고 풀이했다.
◆밝은 표정으로 청와대 떠나
박 전 대통령의 퇴거가 확정되자 청와대 직원들은 오후 6시까지 모두 청와대 녹지원 앞으로 집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오후 6시30분께 관저에서 한광옥 비서실장,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수석비서관들과 티타임을 했다. 이 자리에서 “경제나 외교안보, 복지 분야에서 좋은 정책을 많이 추진했는데 마무리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맡은 바 일들을 잘 마무리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오후 7시께 녹지원 앞길에서 배웅나온 직원 500여명과 인사를 나눴다. 박 전 대통령이 “끝까지 함께 못해 미안하다.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건네자 일부 직원은 눈물을 흘렸다.
박 전 대통령은 참모 및 직원들과 작별인사에서 의외로 밝은 표정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직원들과의 작별인사가 늦어지면서 청와대 퇴거 시간은 예정보다 30여분 늦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7시16분께 경호실에서 준비한 에쿠스 차량을 타고 삼성동으로 향했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