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측 '격분·탄식'
죽봉·각목 휘두르며 과격시위…2명 사망·부상자 60여명
11일 2시 대규모 '불복 시위'
촛불 환호 속 '자축 집회'
"5개월 달려온 민심의 승리…태극기 사망자 진심으로 추모"
[ 김동현/성수영/구은서 기자 ]
1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앞. 오전 일찍부터 모여든 수천명의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이 대심판정으로 입장하자 일대에는 침묵이 흘렀다. 인근 KEB하나은행 안국동지점 앞에 집결한 ‘촛불집회’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선고 요지를 읽기 시작하면서 양측 모두 숨을 죽였다. 일부 군중 사이에 “설마 설마…”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며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선고를 내리자 함성이 터져나왔다. 한쪽에선 감격에 겨워 서로 부둥켜안았고, 다른 한쪽에선 격분하면서 가슴을 쳤다.
◆곳곳 폭력 시위 눈살
‘운명의 날’ 광장 분위기가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탄핵 선고 직후 “대통령이 오늘 자택으로 돌아간다”는 방송이 나오자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낮 12시가 지나자 과격 시위대가 전면에 나서면서 일대가 혼란에 빠졌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가 “질서를 유지해달라”고 자제를 당부했지만 소용 없었다.
참석자들은 “헌재를 박살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 차벽으로 몰려들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과 취재진에게 각목과 사다리 등을 무차별로 휘둘렀다. 낮 12시30분께 집회 참가자 김모씨(72)는 경찰 소음관리차량 옆에 서 있다가 갑자기 떨어진 철제 스피커에 맞아 숨졌다. 경찰은 경찰버스를 탈취해 차벽을 추돌해 사망사고를 일으킨 용의자 정모씨(65)를 이날 긴급체포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 2명이 사망하고, 2명은 중태에 빠졌다. 부상자는 60명이 넘었다.
최상위 경계 태세인 ‘갑호 비상령’을 발령한 경찰은 오후 2시 이후 강경 대응했다. 차벽을 뚫고 들어오는 시위대에 캡사이신을 뿌리면서 진압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오후 폭력 시위를 벌인 7명을 연행하고, 저녁까지 일부 과격 참가자 수십명과 대치했다. 이날 경찰은 헌재 주변에만 57개 중대(4600여명)를 배치했다. 탄기국은 11일 오후 2시께 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어 “탄핵 무효 저항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더 이상 분열 의미 없다”
곳곳에서 폭력 시위가 벌어졌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목소리도 높았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김모씨(58)는 “헌재 결정이 아쉽지만 승복하는 게 법치를 준수하고 애국하는 길”이라며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본래 생활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인용 직후인 오후 1시께 해산한 후 저녁 7시에 다시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가수들의 축하공연을 즐기고 자유발언을 이어간 뒤 9시 조금 넘어 해산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11일 오후 4시 광화문광장에서 승리를 자축하며 20차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날 탄기국 집회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각계에선 ‘사회 통합’을 위해 광장 집회를 멈춰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학계 원로인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헌재 판결 후 반대하는 집회를 열 수는 있지만 무기를 들고 뒤엎겠다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며 “폭력 집회는 사법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사회가 굉장히 분열돼 있지만 헌법적 판결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안보·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모두 힘을 합쳐 달라”고 호소했다.
김동현/성수영/구은서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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