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NCS가 '채용 분야 액티브X'가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7-03-08 17:27
수정 2017-03-08 19:57
학벌·어학 성적 탈피하라는 NCS
취지 좋지만 4차 산업혁명 환경과 괴리

김태훈 IT·과학부 차장 taehun@hankyung.com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저출산, 일자리, 사교육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공약은 많지 않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 해법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런데 큰 예산이 들지 않는 일인데도 호응이 뜨거웠던 발표가 있다. ‘공인인증서, 액티브X 완전 폐지’ 공약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정보통신기술(ICT)분야 공약을 내놓으며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를 완전 폐지해 다양한 인증 방식이 시장에서 경쟁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공감한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액티브X는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보안·인증 등의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도구다. 금융, 결제, 공공기관 사이트를 이용할 때면 공인인증서를 요구한다. 인증을 받으려면 액티브X를 이용해 공인인증서 구동, 백신, 키보드보안 등의 프로그램까지 덕지덕지 깔아야 한다. 누구나 겪어봤을 ‘액티브X 고문’의 과정이다.

액티브X 폐지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중점 추진한 과제였다. 2014년 3월 규제 개혁 장관회의를 시작으로 수차례 논의 끝에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규정까지 없애버렸다. 그렇지만 상당수 공공기관과 금융회사는 여전히 공인인증서를 요구하고 있다.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도구만 액티브X 대신 ‘EXE 파일’ 방식으로 바꾼 게 전부다. 국민의 불편도 그대로다.

그런데 액티브X가 ICT 분야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오랜만에 만난 공공기관의 채용담당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채용이 ‘일자리 분야의 액티브X’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NCS는 학벌·어학성적 같은 스펙보다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정부가 2015년 정한 직무능력표준이다. 산업군에 따라 직종을 나누고 일할 때 필요한 지식·기술을 정의했다. 이를 기준으로 기계업종에 속한 기업은 금형수정, 다듬질 등의 업무 능력을 따져 사람을 뽑을 수 있다.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현장 실무자들이 NCS 적용에 난색을 드러내는 이유는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주발사체 엔진제어 전문가를 뽑는다고 하면 화학에서부터 열공학, 기계공학까지 복합적인 능력을 봐야 하지만 NCS에는 이런 직무 구분이 아예 없다. 급변하는 기술 발전을 고려하면 NCS가 규정한 표준능력은 만들자마자 ‘옛것’이 되고 만다. 이처럼 융합 분야에서 사람을 뽑을 때는 업무 능력을 테스트할 평가수단을 개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혼란이 적지 않은데도 올해부터 모든 공기업, 공공기관은 정부 지침에 따라 NCS에 기반해 신입사원을 뽑아야 한다.

공인인증서도 도입 명분은 좋았다. 표준화된 인증서 보급이 인터넷뱅킹 도입 확산에 기여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가 기술을 의무화하자 부작용이 노출됐다. 금융회사와 보안업체들이 공인인증서 시스템에 안주해버렸다.

특성화고 졸업생 채용 등 NCS의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분야도 있다. 그렇지만 이를 의무화하는 순간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 NCS를 어떻게 활용할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김태훈 IT·과학부 차장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