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화국' 서울대…학내 정치에 발목잡힌 미래
올해 단과대 절반 학장 선거
40여년간 '4년짜리 총장'
선거 때마다 교수들 편가르기…장기 프로젝트 투자는 '먼 일'
'시흥캠퍼스 사태' 장기화
교수·교직원 각자 셈법에 골몰…"총장 힘 빼자" 일부교수들 방관
대학본부에 임금 인상 등 압박…교직원 노조는 점거학생 편들어
[ 황정환 / 박동휘 기자 ]
서울대는 ‘선거 공화국’이다. 4년에 한 번 총장을 뽑고 2년마다 16개 단과대 학장 선거를 한다. 공과대학, 의과대학, 약학대학 등에서 올해에만 8건의 선거가 치러진다. 이 과정에서 교수 간에 벌어지는 암투는 정치판을 방불케 한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짧은 임기의 총장, 학장들이 수두룩한 탓에 장기적인 프로젝트는 시도조차 못 하는 일이 많다. “서울대 정책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2~3년”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매년 선거 치르는 서울대
법인화 이후에 오히려 서울대가 퇴보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로 전문가들은 ‘사공이 너무 많다’는 점을 꼽는다. 형식상으론 총장이 학교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이지만 실제로는 16개 단과대가 독립된 개별 공화국처럼 운영된다.
학장 선출제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학칙상 단과대별로 2명을 추천하면, 총장이 이들 중 한 명을 고르도록 돼 있지만 총장의 ‘간택권’은 명목상의 권리일 뿐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단과대별로 선거를 치러 한 명을 뽑고, 총장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인정하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총장 임기도 사실상 4년 단임제여서 ‘힘 있는 총장’이 나오기 힘든 구조다. 학칙은 연임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1975년 이후 연임 사례는 전무하다. 서울대의 한 원로교수는 “총장들이 취임 후 적응하는 데 1년, 마무리하는 데 1년을 보낸다”고 지적했다. 수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나서는 일도 흔하다.
국내 사립대와 해외 대학들에는 성과에 따라 총장이 연임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퇴임한 존 헤네시 전 미국 스탠퍼드대 총장은 16년이나 재임했다. 헤네시 전 총장은 ‘장기 집권’ 기간에 전체 예산 중 8%를 ‘꼬리표 없는(목적을 정하지 않은)’ 장기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등 스탠퍼드대를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여년 전만 해도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에 밀렸던 스탠퍼드대가 실리콘밸리에 수많은 인재를 공급하는 ‘혁신의 심장’이 된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래를 바라보는 투자는 남 얘기
서울대는 ‘폴리버시티(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와 대학을 뜻하는 유니버시티를 합한 조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단과대가 참신한 정책을 내놓으면 다른 단과대는 견제하기 바쁘다. 지난해 3월 공대가 공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면서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영입하려다 학내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교수 간의 경쟁심이 학문의 칸막이를 높이기도 한다. 한 예로 4차 산업혁명 주요 분야로 일컬어지는 특정 분야의 라이벌 교수들 앞에선 상대방의 이름을 입에 담지조차 않는 게 불문율이다. 서울대의 B교수는 “세계적인 연구자 두 명이 협력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대학본부가 하는 일이라곤 “튀지 말라”고 제지하는 정도다.
서울대 내부에선 시흥캠퍼스 사태도 정치적 셈법에 골몰한 구성원 간 이해관계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시흥캠퍼스는 서울대가 경기 시흥시 배곧신도시에 추진 중인 제2캠퍼스다. 여의도공원의 세 배(66만㎡) 면적에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첨단 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내용이다. ‘서울대의 미래’라고도 불린다. 전직 단과대 학장 A교수는 “현 총장의 입지가 약해지는 걸 바라고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 교수도 꽤 있었을 것”이라며 개탄했다.
교직원들도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쁘다. 학생 30여명이 장기간 본관을 점거하는 바람에 교직원 200여명이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서울대 노조는 오히려 점거 학생들과 연대를 약속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임금 문제 등 각종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황정환/박동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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