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 않을 것 같은 지하철과학관

입력 2017-03-07 09:07
수정 2017-03-07 09:08


(박근태 IT과학부 기자)지난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지하철 6호선 상월곡역 4번 출입구.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을 내려오자 ‘사이언스 스테이션’이란 글씨가 적힌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에 설치된 7~8개 크고 작은 디스플레이에선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여성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 DNA 이중나선을 발견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같은 과학자의 업적을 설명하는 영상이 눈에 띄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을 더 내려가자 정부의 각종 정책을 홍보하는 내용이 가득 적힌 큰 기둥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혹 지하철을 타기 위해 들고나는 시민이 있지만, 전시물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날 기자가 찾은 곳은 세계 최초로 지하철 역에 조성된 과학관을 표방하며 문을 연 상월곡역 사이언스 스테이션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서울시와 성북구의 예산 지원을 받아 지하철역을 과학문화 확산 공간으로 만들겠다며 1년 넘게 조성한 공간이다. 지난 3일 화려한 개관식 행사까지 열며 본격적인 운영을 알렸다. 하지만 개관식 행사가 열린 지 이틀 만에 찾은 지하철 과학관은 찾는 사람 없는 썰렁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과학관은 지하철 이용객은 물론 인근 주민조차 발길이 닿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지하 1층부터 지하 3층까지 들어선 과학관 시설 가운데 대부분은 지하 2층 개찰구 안쪽에 조성됐다. 사실상 유일한 전시 및 체험공간인 바이오리빙랩(의료기기 전시공간)도 개찰구 안쪽에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온 사람을 빼면 일부러 표를 사서 들어가야 하는 구조다.

운영 시간도 주변 현실과 맞지 않았다. 상월곡역은 인구밀집 지역이지만 출퇴근 시간과 등하교 시간을 빼면 낮시간은 역을 이용하는 인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유일한 체험공간인 바이오리빙랩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로 정했다. 그나마 주변 주민들이 갈 만한 시간인 토요일과 일요일엔 아예 문을 닫는다. 강연장에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한 차례씩만 열린다. 불이 꺼진 채 문이 굳게 닫힌 강연장 어디에도 이런 내용을 알리는 안내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역 과학관이라고는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전시물도 형편없긴 마찬가지다. 과학 업적을 알리는 디스플레이와 벽에 붙인 패널이 대부분이고 체험관인 바이오리빙랩에는 컴퓨터 2대와 벽에 붙인 전시물이 전부였다. 미국과 영국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이 직접 만지고 작동시키며 체험하는 과학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사이언스 스테이션이 들어선 상월곡역은 지하철 6호선 36개 역 가운데 4번째로 타고 내리는 사람이 적은 역이다. 인근 월곡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 이런 곳에 지하철 과학관을 지었느냐는 이야기를 하기엔 늦은 감이 있다. 이미 6억2500만원이 들어갔고 올해도 운영에 2억2000만원이 투입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굳이 자리탓을 하지 않아도 세계 최초를 부르짖는 지하철 과학관의 운영 철학과 운영 방식은 미숙해 보인다.

지하철 과학관 운영을 책임진 KIST는 지난해 우상화 논란과 수많은 반대에도 설립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2개월 만에 설치했다. 멀쩡한 거목 두 그루를 베어냈고 직원들이 다니던 지름길도 공사를 빌미로 전격적으로 잠정 폐쇄했다. 동상이 들어선 뒤에는 주변이 너무 허전하다며 화단을 만들고 휴식용 의자를 갖다놓는 등 꽤 신경을 썼다. 정작 세금을 내는 시민에겐 그 정도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기자가 지하철과학관을 찾은 날에도 6호선 지하철에선 이곳이 지하철 과학관임을 알리는 어떤 안내 문구도 나오지 않았다. 정차할 역을 알리는 안내 디스플레이에도 안내문구는 없었다. 정작 중요한 것을 깜빡한 모양이다. 사이언스 스테이션 지하 1층 벽과 지하 3층 기둥에는 이곳이 ‘작은 과학 행성’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좀 더 세심한 운영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그 앞에 ‘아무도 가지 않는’이란 말이 머지않아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끝) /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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