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20대에 사춘기 앓는 '어른아이들'이 위험하다

입력 2017-03-02 18:14
부모 손잡고 병원 찾는 20대 어른들
청소년기 정체성 고민 억압·외면한 탓
자신감 있는 386 부모세대 영향도 원인

강병훈 <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 정신과·소아정신과 전문의 >


진료실에 20대 초·중반의 대학생이나 수험생, 직장인이 부모와 같이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전에는 만 18세의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혼자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20대 초·중반 성인도 청소년과 같은 형태로 진료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진료 형태뿐 아니라 정신적 성숙도 역시 중·고교생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부모도 아이를 성인이 아니라 중·고교생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료 형태와 성숙도만 청소년기와 유사한 게 아니다. 그들의 문제 역시 청소년기에 겪었어야 할 부모에 대한 반항심, 가치관에 대한 혼란, 자기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여서 진료 중에도 대학생이 맞는지, 성인이 맞는지 계속 생년월일을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청소년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성인기를 맞이한 사람이 겪는 우울, 불안, 분노, 혼란 등의 정신과적 증상은 제 나이의 문제를 들고 온 청소년의 증상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어려우며 심한 경우가 많다. 미국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의 심리발달단계이론에 의하면 청소년기의 주된 심리발달 과제는 자아 정체성의 확립이며 그 다음 시기인 초기 성인기의 주된 심리발달 과제는 청소년기에 어느 정도 확립된 자아 정체성의 바탕 하에 사람들과 친밀함을 늘려나가는 것이라 한다. 이 이론에 따라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의 과제가 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다음 과제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청소년기의 과제와 성인기의 과제가 겹쳐지면 동시에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를 더욱 짓누르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제 나이에 해야 할 청소년기의 고민이 성인기까지 미뤄진 것이다. 본인과 가족은 미뤄진다는 것도 몰랐을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지 않고 대학입시까지 무난히 치르게 된 것에 대해 그 당시에는 매우 다행이라 여겼다고 하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당사자인 환자도 주변에서 ‘중2병’이니 뭐니 하면서 사춘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모습을 보면서 사춘기를 겪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내면의 요구를 억압하고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많아지는 것일까. 우선 입시에 편중된 현행 교육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처한 현실과 부모 세대의 특징이 연결돼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른바 386세대라는 1960년대 출생자와 뒤따르는 1970년대 출생자가 현재 부모세대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이전 부모세대에 비해 좀 더 아는 것이 많으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다. 또 이전 부모 세대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정도부터 자신을 기성세대라 인식하며 유교적인 질서나 가치를 지키려고 힘들게 노력했다면 지금 부모 세대는 40~50대에도 이전 부모세대에 대항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여전히 자신이 신세대라는 생각-적어도 구세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작 사회에서는 이들이 기성세대의 주축이 되는 묘한 상태를 보인다.

하지만 지금 부모 세대 역시 나름의 약점이 있고 그로 인해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헬조선’이니 ‘지옥불반도’니 하는 말이 나오게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부모의 판단이 옳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녀에게 대학입시의 중요성과 청소년기의 고민이 불필요함을 얘기하기 때문에 더더욱 자녀들이 이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가 돼 부모의 요구에 맞춰 나름의 고민을 별다른 대책 없이 미루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저성장 시대에 청소년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대신 취업 등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강병훈 <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 정신과·소아정신과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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