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그제 내놓은 경영 쇄신안이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우선 58년이나 유지해온 그룹 중추 조직(미래전략실)을 해체키로 했다. 매출 300조원의 글로벌 기업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컨트롤타워가 필요할 텐데 정경유착, 불법·탈법 시비를 원천 차단하려는 의지가 더 강했을 것이다. 대관(對官) 조직을 없애겠다는 것도 획기적이다. 앞으로는 떳떳하게 사업하겠다는 선언이다. 모든 계열사가 일정액 이상의 기부금을 이사회 승인 후 집행토록 한 것은 ‘게이트’ 연루 소지를 차단하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해석된다.
재계의 독보적 1위인 삼성의 변신이 다른 기업들에 미칠 영향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투자 고용 납세 등으로 국가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대접은커녕 ‘동네북’이 되기 일쑤인 게 한국의 대기업이다. 각고의 노력과 과감한 결단으로 세계적 기업이 돼도 정경유착으로 컸다는 비난과 뿌리 깊은 반기업 운동에 시달려 왔다. 이에 편승한 정치권은 툭하면 기업인을 국회 청문회로 불러내 군기를 잡고, 선거 때마다 재벌개혁 카드로 압박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기업은 때리면 때릴수록 더 나온다’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해 있는 듯하다. 새로운 정치권력이 들어설 때마다 기업을 터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비난하는 정치권도 정작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대북사업, 상생기금, 미소금융 등 온갖 명분으로 제 호주머니에서 꺼내듯 기업의 돈을 뜯어냈다. 사회적 책임이란 미명 아래 기업의 기금 출연을 법제화하고 기부금을 요구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면서 경영권마저 무장해제시킬 상법 개정안 등으로 더 옥죄고 있다. 내로라하는 시민단체들도 앞에서는 기업을 압박하고 뒤에서는 손을 벌려왔다. 위선의 썩은 냄새가 풀풀 난다.
삼성은 더 이상 ‘봉’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업들도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이윤창출이란 본연의 역할에 전념할 때라야 문명의 진보에 기여하고 고용도 확대할 수 있다. 이제 바로잡을 때다. 스포츠단체장, 구단 등에서도 손 떼고 여의도를 기웃거리지도 말라. 그래야 당당하게 ‘기업할 자유’를 요구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