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편집국 부국장 hyunsy@hankyung.com
미국이 오는 4월 ‘환율조작국’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 중국은 물론 한국도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4월 위기설’이 나도는 이유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원화 환율이 떨어져 수출이 줄고,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원화 환율을 걱정한다면 그건 잘못된 방향이다. 환율이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예컨대 중국은 1980년 달러당 1.5위안이었던 환율을 1990년 4.78위안으로 평가절하했는데도 무역적자가 계속됐다. 수출할 물건은 별로 없고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자본재를 계속 들여와야 했기 때문이다. 1990년에 가서야 흑자를 냈다. 이 과정에서 수입 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민초들의 삶만 고달파졌다. 1989년 톈안먼 사태가 그냥 일어난 게 아니다.
한국은 어떤가. 1970년 달러당 310원이었던 환율이 1980년 607원으로 쭉 올랐다. 이 기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중화학 설비투자가 마무리되고 3저(저금리 저유가 저원화) 호황이 찾아온 1986년에 가서야 흑자로 돌아섰다.
환율만으론 무역수지 못 바꿔
중국은 이미 ‘세계의 공장’이다. 환율로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도 ‘수출 주도형 개방경제 체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반면 미국은 ‘소비 대국’이다. ‘달러라는 최고의 수출품’을 갖고 있는 미국이다. 무역적자를 오히려 즐긴다.
미국이 ‘부양’을 시도할 정도로 경기가 나쁜 것도 아니다. 실업률은 ‘완전 고용’에 근접한 4.8%(지난 1월)다. 물가는 지난 1월 한 달 동안 0.6%(전년 동월 대비로는 2.5%) 올랐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런데도 위안화와 원화 강세를 유도한다고? 설득력이 없다.
온갖 손짓과 몸짓을 섞어가며 “중국은 환율조작 그랜드 챔피언”이라고 떠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현란한 레토릭에 당하지 말자. 트럼프에게서 잠시 눈을 떼고 국제 금융시장을 들여다보자. 큰 사건 하나가 보인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작년 1월)이다.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 금융질서를 아시아에서 깨겠다는 중국의 시도다. ‘위안화의 국제화 선언’이다.
국가 리더십 부재가 큰 문제
외환보유액에서도 이런 변화는 읽힌다. 지난 1월 말 중국 외환보유액은 2조9982억달러로 2년 반 전인 2014년 6월 말(3조9932억달러)에 비해 1조달러나 줄었다. 시뇨리지(화폐주조 차익)를 누리는 기축통화국이 되겠다는 의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무지막지한 돈 풀기(양적완화)에 나선 것에 대한 ‘응전’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보기에 중국은 ‘국제 상품시장에서 무역흑자를 내는 신흥시장국, 자본시장에선 기축통화 혜택을 누리는 선진국’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냥 놔둘 순 없다.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대우받고 싶으면 미국처럼 상품시장을 확 개방하라’는 게 환율조작국 지정의 본 뜻이다. 아니면 종전대로 신흥시장국처럼 미국 국채를 계속 사 모으든지….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비단 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대만을 포함하는 ‘하나의 중국’ 논란, 남중국해 군사 대치, 북한 핵무기 대응 등 곳곳에서 부딪히고 있다. 원화 환율이 문제가 아니다. 두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리더십 부재가 정말 문제다.
현승윤 편집국 부국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