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트럼프 선물' 2탄…미국 원유 수입 늘린다

입력 2017-02-23 19:28
수정 2017-02-24 05:01
미국 통상압력 선제대응 나선 일본
원유 생산량 늘리려는 미국, 교역국에 수입 압박 가능성
무역 불균형 불만 잠재우고 미국 에너지 사업 참여 기회 노려
중동 의존도 낮추는 효과도


[ 도쿄=서정환 기자 ] 일본 정부가 미국산 원유 수입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 에너지 사업에도 적극 참여한다는 전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자동차 등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을 앞세워 가해올 통상압박을 피하려는 대응으로 분석된다.


◆일본 미국 원유 조달 비중 0.3%

2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이날까지 열린 일본 외무성의 ‘에너지·광물자원 관련 재외공관전략회의’는 미국산 원유 조달 확대를 집중 논의했다. 회의에는 미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자원 관련 17개국 재외공관과 정부계 금융기관인 국제협력은행 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소노우라 겐타로 외무성 차관은 회의에서 “미국은 에너지 수출국이 되려 하고 있다”며 “(일본은) 국제 정세와 에너지 수급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나올 회의 보고서에도 일본의 자원외교 전략상 미국산 원유·가스 조달 확대를 명시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일본의 미국산 원유 조달 비중은 0.3%에 불과했다.

산유국인 미국은 1970년대 제1차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유 수출을 금지했다. 이후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기술 개발에 따른 자국 내 ‘셰일혁명’에 힘입어 2015년 말 원유 수출 허용을 결정했다.

지난달 24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미국 텍사스를 잇는 ‘키스톤 XL 송유관’과 ‘다코타 대형 송유관’ 등 2대 송유관 신설을 재협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환경파괴 우려가 있지만 이들 송유관 건설로 미국 원유 생산량이 10%가량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월 정유회사인 일본 코스모에너지홀딩스는 미 정부의 수출 허용 이후 처음으로 미국산 원유를 수입했다. 일본 정유업계는 하루 약 390만배럴의 원유에서 휘발유와 경유 등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달 6일에는 도쿄전력홀딩스가 미국산 셰일가스를 처음 수입했다.

◆에너지 안보 차원 판단도

일본 정부가 미국산 원유·가스 수입을 늘리려고 하는 것은 과도한 중동 원유 의존도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일본은 원유 수입량의 80% 이상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지역에서 들여온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로 인해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면 원유의 안정적 조달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운송비 등 원유도입 비용 측면에서는 미국산이 중동산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에너지 안보적으론 추진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는 측면도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안보·경제 동맹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일본이 미국산 원유 수입을 늘리면 일본의 대(對)미 무역흑자는 줄어들 수 있다.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689억달러로 독일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일본 기업들이 미국 내 에너지사업에 적극 참여할 수도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앞으로 미·일 경제대화에서 무역과 투자 분야를 폭넓게 협의할 예정이다.

일본 기업들의 미국 투자는 미국 내 고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양국이) 윈윈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원 가격 변동으로 사업 변동성이 큰 점은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기업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지 여부는 미·일 경제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달렸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