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 기능 강화해 창업 리스크 줄이고
M&A 활성화로 바이오기업 투자 선순환 유도
'식품+바이오' 등 융합 스타트업도 키워야
[ 조미현 기자 ]
미국 바이오 벤처기업 오발론은 다이어트용 의료기기인 풍선캡슐을 개발한 회사다. 질소로 충전된 풍선캡슐을 먹으면 위에서 포만감을 느껴 음식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 신개념 비만 치료를 고안한 이 기업은 미국 벤처캐피털(VC) 도메인이 2008년 설립했다. 도메인은 UC샌디에이고가 보유한 유망 기술을 사들인 뒤 전문가들을 모아 회사를 차렸다. 국내 미래에셋벤처투자 등도 투자한 오발론은 지난해 나스닥에 상장해 시가총액 7500만달러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 실패 부담 나눌 수 있어야”
신정섭 KB인베스트먼트 본부장은 지난 21일 열린 한경바이오헬스포럼에서 ‘바이오, 창업에서 회수까지’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에서는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털이 직접 벤처기업을 차리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바이오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모험자본인 벤처캐피털의 역할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 투자금액은 4686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투자금액(2조1503억원)의 21.8%를 차지하는 등 부문별로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벤처캐피털이 단순 지분 투자에만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의사 과학자 연구원 등 이미 성공한 전문인력의 창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벤처캐피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연구는 연구자가 전담하고 경영 및 투자는 벤처캐피털이 맡으면 실패 위험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벤처캐피털이 7년 이상 벤처기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없다. 이학종 분당서울대병원 의료기기R&D센터장은 “스탠퍼드대 등 미국 대학은 연구는 교수가, 비즈니스와 투자는 대학과 벤처캐피털이 각각 담당하는 분업화가 잘 이뤄지고 있다”며 “실패가 훈장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IPO·M&A 더 활성화해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처럼 ‘바이오 기업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창업자가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원천기술이 없는 비전공자라도 안목을 발휘해 좋은 기술을 사들인 뒤 사업화에 도전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유승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병원 등 기초 연구기관이 외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혁신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형기 셀트리온 사장은 “국내에서는 기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보다 비전문가라는 선입견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초기 기술을 평가하는 전문인력도 많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공개(IPO), 대형 제약사로의 인수합병(M&A) 등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병건 한국바이오협회 이사장은 “딜로이트컨설팅이 뽑은 올해 제약산업 3대 키워드 중 하나가 M&A”라며 “미국, 유럽처럼 한국도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에서 성공적인 M&A 사례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문수 이노테라피 대표는 “벤처기업의 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술특례상장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융합 스타트업도 육성을”
치료제 의료기기 등 레드바이오뿐 아니라 그린바이오(식품+바이오), 화이트바이오(에너지+바이오) 등 바이오 융합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발굴·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정일 CJ제일제당 통합연구소사업단 고문은 “전체 바이오 시장에서 그린바이오와 화이트바이오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며 “바이오 헬스산업 육성을 위해 융합 분야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도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