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막힌 '시진핑 신실크로드'…고속철 건설 위법성 조사 받아

입력 2017-02-21 18:57
헝가리~세르비아 철도로 연결, 29억달러 투입한 '핵심 물류망'
시공사 선정 과정서 '중국 입김' 의혹…자금조달 계획 등도 조사하기로
EU법 위반 땐 사업 지연될 수도


[ 베이징=김동윤 기자 ] 유럽연합(EU)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제동을 걸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사이에 추진되고 있는 고속철도 건설 사업이 EU의 공공조달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잡고 조사 중이다.

이 고속철 사업은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유럽지역에 처음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여기서 차질이 빚어지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공을 들이고 있는 일대일로 구상의 추진 동력도 약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U, 공공조달법 위반 조사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부다페스트와 베오그라드 구간에 건설되는 고속철 건설 사업을 조사하고 있다. 고속철 건설에 투입될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있는지, 고속철 시행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EU의 공공조달법을 위반했는지가 도마에 올랐다.

이 중 헝가리 지역에 건설되는 고속철 사업의 시행사 선정 과정이 주요 타깃이다. 헝가리는 EU 회원국으로 가입돼 있어 대규모 공공사업을 할 때 EU의 공공조달법을 엄격하게 준수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EU 공공조달법은 고속철 건설과 같은 공공인프라 구축사업을 할 때 공개경쟁입찰을 거쳐 사업 시행 주체를 선정하도록 했다. EU 집행위는 이 고속철 사업을 중국철도국제공사와 중국수출입은행이 수주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고속철 시행사 선정 과정에서 공공조달법 위반 사실이 발견되면 EU 집행위는 벌금을 부과하고, 법 위반 사항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헝가리 정부는 “중국 정부와 계약 체결 과정에서 EU 집행위에 공공조달법 위반 여부를 자문했으며 관련 내용을 계약서에 부속 문서로도 첨부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일대일로 구상 타격받나

FT는 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 간 고속철 건설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면 시 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 구상도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작년 11월 라트비아에서 열린 중국과 동유럽 16개국 간 정기협의체 ‘중국·동유럽 정상회의’에서 헝가리·세르비아 정부와 양국 수도를 잇는 고속철을 건설하기로 각각 합의했다. 총 28억9000만달러가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고속철이 건설되면 육로 기준 8시간 정도 걸리는 이동시간이 3시간으로 대폭 단축돼 헝가리·세르비아 정부도 큰 기대를 걸어왔다.

타마스 마투라 헝가리 코르비누스대 교수는 “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 간 고속철은 중국이 EU 표준에 부합하는 고속철을 건설할 역량이 있음을 보여줄 상징적인 사업이어서 순조롭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으로 중국 서부 신장자치구의 우루무치와 중앙아시아·동유럽·서유럽·아프리카를 잇는 물류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에 맞춰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 등의 장기 사용권을 확보해왔다.

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 간 고속철은 서유럽·아프리카 등지에서 피레우스 항구까지 해상 운송을 통해 들여온 물자를 동유럽·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실어나를 육상 운송로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고속철 사업에서 차질이 발생하면 중국이 실질적인 손해도 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헝가리가 공공조달법 위반 문제로 EU 조사를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헝가리 정부는 2014년 원자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러시아 국유 에너지기업 로사톰에 맡기는 과정에서 공개경쟁입찰을 하지 않아 조사받았다.

EU 집행위는 작년 12월 “원전 건설에 필요한 특정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업체가 로사톰밖에 없었다”는 헝가리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과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는 중국의 전략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9월 동남아 순방 때 처음 제기했다.

중국 명나라 시절 해외 교역로였던 실크로드에 착안해 ‘육상·해상 실크로드’로도 불린다. 중국은 육상과 해상 두개 축을 중심으로 관련 국가와 물류·통신 등 인프라를 구축하며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