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부풀리려는 미국…'통상압박 카드'로 쓰나

입력 2017-02-20 19:31
무역수지 계산법 변경 검토

'수입 후 재수출'은 수출서 제외
계산법 바꾸면 적자폭 두 배로
기존 무역협정 재협상 나설 듯


[ 뉴욕=이심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무역수지를 계산하는 방법을 바꿔 무역적자 폭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무역적자가 늘면 교역국에 기존 체결한 무역협정의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고, 수입품 관세 부과 때 더 많은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새로운 계산법이 도입되면 미국으로 수입된 뒤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캐나다와 멕시코 등 다른 국가로 재수출되는 상품은 수출 항목에서 제외된다. 이를 멕시코에 적용하면 지난해 631억달러(약 72조5650억원)인 무역적자가 1154억달러로 약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재수출품이 가장 많은 국가는 멕시코였다. 이어 캐나다, 유럽연합(EU), 홍콩, 중국, 일본 순이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이 같은 방식이 똑같은 재화를 수입에는 포함시키고 수출에서는 제외시켜 무역적자를 부풀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도 지난주 새로운 계산법을 적용한 데이터를 사용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이런 방식이 정확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페인 그리핀 USTR 부국장은 WSJ에 “아직 논의가 초기 단계”라며 “채택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미국 내 생산과 일자리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면서 수출품의 정의도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한정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수입품 역시 미국 내에서 실제 소비되기 위한 제품으로 범위를 좁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경제학자는 무역협정이 한 국가의 무역수지를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며 투자와 저축률이 더 큰 역할을 한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이 무역수지에서는 적자를 보더라도 경쟁력이 있는 서비스 수지에서 이를 상쇄하는 흑자를 거두고 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WSJ는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도 재수출을 수출 항목에서 제외하면서도 수입에는 포함하는 것은 무역수지 적자를 부풀리거나 흑자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전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