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업계 전문가들을 만나다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기사만 봐서는 모르겠어. 데이터를 봐야 알지." 높아진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만큼 이 분야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자료 없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헬스케어 기업들의 주요 임상 데이터를 이 곳을 할애해 전달한다. [편집자주]
바이로메드는 지난 6일 국제학술지(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nd Frontotemporal Degeneration)를 통해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 ALS)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 임상1상 결과를 공개했다.
치료제 후보물질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1상은 통상적으로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치료제가 없는 경우 환자를 대상으로 한 1상이 가능하다.
이번 임상1상에 사용된 후보물질 'VM202'는 유전자 치료제다. 간세포성장인자(HGF)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근육에 주사하면 투여 부위에서 HGF 단백질을 생산해 미세혈관의 생성을 유도하고 신경세포의 성장 및 재생을 촉진한다. 이를 통해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목표다.
루게릭병은 근육운동에 필요한 운동신경들이 파괴되는 희귀질환이다. 호흡을 포함한 전신의 근육운동 기능들이 빠르게 퇴화해 대부분 증상 발생 후 2년에서 5년 내에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른다.
바이로메드는 VM202의 신경세포 재생 효과가 신경퇴행성 질환인 루게릭병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상1상은 1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각각 9명씩 두 그룹으로 나눠 7일 간격으로 4회에 걸쳐 총 64mg의 VM202를 주사한 후 9개월간 추적 관찰했다. 주평가 사항은 안전성이고, 부평가 사항은 병의 진행 속도 측정 등이었다.
그룹1은 '다리-손과 팔-다리-손과 팔' 순서로, 그룹2는 '손과 팔-다리-손과 팔-다리'
순서로 VM202를 주사했다. 루게릭병은 증상의 시작 부위가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투여 순서에 따른 차이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 "약물 관련 심각한 부작용 없어…안전성 확인"
임상1상 결과 보고된 부작용은 모두 79건이었다. 대부분이 주사 방식에 의한 멍과 통증 등 경미한 것이었고, 보고된 5건의 심각한 부작용도 약물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연구결과 밝혀졌다. 5건 중에는 1명의 사망이 있었는데, 이는 VM202의 문제가 아니라 루게릭병의 진행 때문이었다.
루게릭병에서 VM202의 안전성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1상에서 사용한 64mg은 현재까지 사용된 VM202 최고 용량의 4배이기 때문에 안전성 결과가 중요했다. 바이로메드는 앞서 당뇨병성 신경병증(DPN) 환자 대상 임상2상에서 VM202 16mg을 사용했었다.
용량을 늘린 것은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증상이 다리에만 나타나지만, 루게릭병은 전신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재균 바이로메드 연구소장은 "용량이 4배나 늘었는데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결과"라며 "예를 들자면 1알을 먹던 아스피린을 4알 먹어도 부작용이 없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투여 전과 후 2시간이 지난 뒤 혈액에 있는 VM202의 양을 측정했다. 그 결과 2시간 뒤에는 VM202가 있었으나, 7일 후에는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했다(그래프 A). 이와 함께 투여 후 환자 체내의 HGF 단백질의 수치도 큰 변화가 없었다(그래프 B). 성장인자인 HGF가 과발현되면 암세포의 성장 등에 영향을 줄 위험성이 있다. 그래프에서 각각의 점이 임상 환자들의 수치고, 검은색 막대는 평균을 나타낸다.
이상의 결과에서 투여 순서를 달리 한 그룹1과 2에서의 의미있는 차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 "2개월간 50% 환자서 병 진행 안 돼"
비록 환자수가 18명으로 적지만 부평가지표에서도 VM202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들이 나왔다. 루게릭병의 진행 속도를 보여주는 'ALSFRS-R' 수치를 통해서다. 이 지표는 사람의 신체활동을 평가하는 것으로 언어 소근육 대근육 호흡 등 4가지 영역에서 12개 항목을 본다. 각각 4점으로 48점이 최고치다.
1상 환자 18명은 루게릭병의 증상이 나타난 지 평균 13.2개월이 지났고, 투약 전 ALSFRS-R 수치의 평균은 38.7이었다.
VM202 투약 후 3개월 동안 환자들의 평균 ALSFRS-R 수치는 각각 전월 대비 1.0, 0.91, 0.76씩 낮아졌다. 이는 루게릭병 환자들의 평균 진행 속도인 1.02보다 느린 것이다. 루게릭병 환자의 ALSFRS-R 수치는 1개월마다 평균 1.02씩 낮아지는데, VM202를 투여한 후에는 이보다 병의 진행 속도가 둔화됐다는 의미다.
특히 투여 후 2개월까지 50%의 환자에서는 ALSFRS-R 수치가 낮아지지 않거나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3개월째에도 약 25%의 환자가 ALSFRS-R 수치에서 변화가 없거나, 수치가 높아지는 결과를 나타냈다.
유일한 루게릭병 치료제인 '리루텍'은 2개월 수명 연장 효과로 시판 허가를 받은 바 있다.
임상 책임자인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존 케슬러 교수는 "VM202를 투여 받은 3개월 동안 다수 피험자들에서 신체 기능이 안정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런 결과는 루게릭병에서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결과를 좀 더 큰 규모의 위약 대조 임상에서 재현할 수 있다면 VM202는 혁신적 치료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바이로메드는 루게릭병을 대상으로 한 VM202의 임상2상을 지난해 9월 미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허가받았다. 8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 10개 병원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중눈가림(환자와 의사 모두 위약 여부를 모르는 것) 방식으로, 위약군과 VM202 투약군을 1대 1로 무작위 배정한다.
초기에 2주 간격으로 2회 투여, 2개월 뒤 다시 투여한 후 9개월에 걸쳐 VM202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할 계획이다. 2개월까지 큰 효과를 보였던 1상 결과를 감안해, 2개월 이후 재투여를 결정했다. 재투여 이후에도 2개월간 효과를 보일 것으로 바이로메드 측은 기대하고 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