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매콤한 양젖치즈 넣은 송아지 곱창볶음 한국인 입맛에도 '딱'

입력 2017-02-19 16:46
수정 2017-02-19 16:50
'글쓰는 셰프' 박찬일의 세계음식 이야기 - 이탈리아 ②

"단순해야 이탈리아식"…햄 한 장 달랑 넣은 '파니노' 는 국민간식


딱딱한 빵을 부드럽게 먹기 위한 수프

피렌체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지역 특유의 수프를 먹어보자. 옛날 유럽 민중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빵을 직접 구워서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대개는 싸구려 빵을 사서 한참 두고 먹었다. 빵이 딱딱해지는 게 당연한 일. 그래서 주로 물에 적셔서 먹거나 채소를 넣고 끓여 먹었다. 마치 우리가 누룽지를 먹는 법과 비슷하다. 불을 지필 수 있으면 딱딱한 빵을 뜯어 넣고 물을 부어 죽처럼 쑤어 먹었다. 이것이 수프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양식의 첫 번째 코스로 먹는 촉촉하고 진한 수프는 그다지 광범위하지 않았다. 일종의 왕실 음식이나 귀족들의 식탁에 올랐다. 마치 우리가 불고기나 등심구이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왕족과 귀족의 음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이탈리아에 가면 지금도 그 빵 수프의 원형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다 보니 일종의 소울 푸드가 돼 지금도 많이 먹는다. 마치 우리가 가난의 상징 같았던 누룽지를 지금도 식당에서 일부러 찾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바로 파파 콜 포모도로(pappa col pomodoro)라는 요리다. 묵은 빵을 뜯어 넣고 토마토소스에 끓인 것이다. 토마토는 워낙 값이 싼 채소이니, 여기에 빵을 넣고 끓인 걸 먹었다. 나도 사 먹어봤는데 고깃국물을 넣어서 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마치 맛이 풀죽 같았다. 과거에는 고기를 넣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송아지 내장으로 만든 매력적인 요리

피렌체의 요리 하나를 더 들어보자. 이탈리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즐겨 먹는 소 내장 요리다. 유럽에서도 창자는 훌륭한 요리 재료다. 주로 송아지 내장을 이용한다. 우리와 달리 유럽은 송아지고기를 즐긴다. 육용, 젖용을 따로 기르지 않기 때문에 수컷을 낳으면 주로 어릴 때 잡아서 고기로 쓴다. 그래서 송아지 내장이 유통되는 것이다. 내가 자주 요리했던 건 로마나 피렌체식의 곱창볶음이었다.

한국은 곱이 빠지지 않게 잘 굽는 게 중요한데, 서양에선 곱이야 빠지건 말건 내장을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익히는 걸 선호한다. 먼저 곱창을 식초와 와인으로 잘 씻어 토막을 쳐서 준비해 둔다. 보들보들한 송아지 곱창의 촉감이 매끈하다. 이후 팬에 양파와 셀러리, 마늘을 살살 볶고 연기가 피어오르면 준비한 곱창을 넣는다. 빠르게, 센 불로 볶고 화이트와인이나 그라파(이탈리아의 증류주)를 흩뿌려 냄새를 없앤다. 그

다음엔 신선한 토마토소스를 넣고 뭉근하게, 오래도록 끓인다. 쫄깃한 곱창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조금 색다르겠지만 충분히 좋아할 맛이다.

곱창은 잘 익어서 여릿여릿하고, 씹으면 야들하다. 소스는 곱이 충분히 배어나와 토마토소스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고소하고도 자꾸 숟가락을 들이밀게 하는 마력을 일으킨다. 이걸로 요리가 끝난 게 아니다. 페코리노라고 하는, 파르메잔 치즈 같은 딱딱하고도 진한 맛(혀가 아릴 정도로 매운맛이 있다)이 나는 양젖 치즈를 갈아 넣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런 질 좋은 양젖 치즈가 없으므로 파르메잔 치즈를 갈아 넣으면 된다. 그리고 포크로 푹 떠서 거친 이탈리아 빵 위에 얹어서 먹는 것이다. 닭육수를 넉넉히 부어서 만들면 수프가 되기도 한다.

치즈와 햄만 넣는 이탈리아 샌드위치 ‘파니노’

지난번 연재에서 커피 마시는 곳을 바(bar)라고 했다. 저녁부터는 술도 마시지만, 커피숍의 역할이 더 크다. 그런데 아침에는 커피, 저녁에는 간단한 알코올 음료가 주력이라면 점심은 뭘 팔까. 바로 샌드위치다. 샌드위치만을 파는 가게가 따로 있지만, 그다지 숫자가 많지 않고 바에서 같이 판다. 샌드위치는 이탈리아인들의 점심이나 오후 간식거리다. 저녁을 늦게 먹기 때문에 오후에 먹기도 하고,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샌드위치가 아니다. 하얀 식빵 사이에 으깬 감자와 베이컨 등을 넣는 것은 영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화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사회에서 널리 퍼졌고, 해방 후에도 굳건히 자리잡았다.

이탈리아의 샌드위치는 파니노(panino)라고 부른다. 좀 딱딱한 듯한 빵 사이에 재료를 끼워넣는다. 그런데 아주 간결하다. 복잡한 재료 넣는 걸 싫어하는 이탈리아인답다. 파스타도 재료가 아주 간단하듯이, 샌드위치도 그렇다. 가장 흔한 건 빵 사이에 치즈와 햄을 얇게 한 장씩 넣은 거다. 아니면 치즈만 한 장, 또는 햄만 한 장 넣기도 한다. 채소(상추)와 토마토를 넣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피가 뚝뚝 배어 나오는 구운 고기를 넣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간단하지 않으면 샌드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 생햄, 즉 프로슈토를 달랑 한 장 넣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샌드위치집에서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라고 해 ‘파니니’라고 부르는 걸 판다. 치즈와 햄을 넣고 뜨거운 기계로 눌러서 겉을 바삭하게 만드는 샌드위치다. 이탈리아에 없는 건 아니지만, 흔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냥 차갑거나 상온의 빵에 역시 차가운 재료를 끼워 넣는 것이 이탈리아다운 샌드위치다. 길에서 들고 다니며 먹기도 하고, 학생들이 간식으로 사먹기도 한다.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에 바에 들러 이걸 하나 베어물고 천연덕스럽게 걸어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미국식의 핫도그도 축제장 같은 데서 인기다. ‘홋도그’라고 부른다. 거의 비슷한 맛이다. 구운 소시지만 달랑 하나 사서 먹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 소시지는 대개 이탈리아식 생 소시지다. 아주 짜지만 맛있다. 빵에 얹어서 미국식으로 먹을 수도 있다.

올리브, 문어 등 길거리 음식도 발달

길거리 음식 얘기가 나온 김에 몇 가지 더 해보자. 이탈리아는 길거리에서 뭘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메뉴가 많지는 않다. 앞서 샌드위치 정도가 대세다. 지난번 피자 편에서 언급했지만, 조각 피자를 종이로 싸서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인기 있는 케밥 스타일의 길거리 음식도 있다. 피아디노라고 부른다. 얇은 전병에 몇 가지 재료를 넣어 둘둘 말아서 판다.

겨울이 되면 밤을 구워 파는 노점이 많다. 관광지에서 많은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사먹는 것 같지는 않다. 재미있는 건 군밤장수도 일일이 전표를 끊고 세금 처리를 한다는 것이다. 안 받아가면 쫓아와서 쥐여주기도 한다. 노점도 세금을 내고 허가받은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더러 불법체류자가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을 행상으로 파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리 음식 중에 올리브도 있다. 우리가 아는 그 올리브다. 그걸 비닐봉

에 담아주면, 걸어다니면서 먹고는 씨는 길에다 뱉는다. 점잖은 사람이 먹는 경우는 별로 못 봤다. 시칠리아에서는 문어를 삶아서 길거리에서 파는 경우도 있다. 플라스틱 접시에 담고 이쑤시개나 플라스틱 포크를 준다. 정말 맛있다.

아란치니라고 하여, 토마토소스와 고기볶은 걸 밥에 넣어 오렌지 모양으로 만든 후 기름에 튀긴 것도 인기다. 작은 만두처럼 생겼는데, 안에는 피자치즈와 토마토소스를 넣어 튀긴 것도 있다. 판체로티라고 부른다. 한국에도 홍대 앞에서 파는 걸 본 적이 있다. 이 정도가 길거리 음식이다. 점차 종류가 많아지는 것 같다. 이탈리아도 국제적 흐름에 따라 외국 음식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 스시도 밀라노에서 본 적이 있으니까. 물론 아프리카 쪽이나 남아시아 요리사가 만드는 스시다. 맛은 참 특이(?)하다.

박찬일 셰프 chanilpark@naver.com

박찬일 셰프는

잡지기자로 활동하던 30대 초반 요리에 흥미를 느껴 유학을 결심, 1998년부터 3년간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피에몬테 소재 요리학교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의 ‘요리와 양조’ 과정을 이수했고, 로마의 소믈리에 코스와 슬로푸드 로마지부 와인과정에서 공부했다. 광화문 무국적 술집 ‘몽로’와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를 오가면서 요리하는 주방장이다. 《미식가의 허기》를 비롯해 다수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