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성장, 철학 없는 포퓰리즘 탄생시켜"
[ 이상은 기자 ]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90·사진)이 “경제적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이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이코노미클럽 행사에 참석해 지난 수년간 저성장이 이어진 결과 경제 포퓰리즘 경향이 나타난다며 그 대표적인 증거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을 꼽았다.
그는 “포퓰리즘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처럼 구조를 갖춘 경제철학이 아니다”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대중과 고통을 줄여주겠다며 나서는 지도자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진을 벗어나는 데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금융위기 후 연 3%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 20세기 초 대공황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그린스펀의 후임자인 벤 버냉키 전 Fed 의장과 재닛 옐런 현 의장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금리를 0% 근처까지 떨어뜨리고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QE)를 통해 시중의 채권을 사들여 돈을 풀었다. 그 결과 Fed 재무상태표상 자산 규모가 4조500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런 정책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즉답하지 않았다. 대신 생산성 향상을 꾀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가 더디게 도입되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생산성 향상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제활동의 기본인데 이를 위한 자금 투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그걸 할 의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올해 유럽에서는 그린스펀 전 의장이 경고한 ‘경제적 포퓰리즘’이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 오는 4~5월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프랑스도 영국처럼 유럽연합을 탈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프랑스 국채 가격이 떨어지는 등 시장도 혼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르펜 대표가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더라도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하면 2차 결선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며 그의 당선 가능성이 과장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양쪽 전망이 엇갈리면서 손바뀜이 활발히 일어나 프랑스 국채 거래량이 급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