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실내 수세식 화장실' 없이 사는 사람…러시아인 2000만명·한국인 200만명

입력 2017-02-17 17:01
■ 아하! 이런 뜻이

해우소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렇게 부른다. 근심과 번뇌가 사라지는 곳을 뜻한다. 해우소에선 아래를 보지 말고, 힘쓰는 소리를 내지 말고, 외울 것이 있으면 암송한다.

화장실은 기초적인 삶 수준

OECD의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 재미있는 통계가 실렸다. 34개 회원국과 러시아 브라질 등 36개국을 대상으로 한 ‘기초시설’ 조사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초시설(basic facility)은 집안에 혼자 쓸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지를 말한다. 삶의 질에 관한 조사에서 화장실이 빠진다면 화장실이 섭섭해할지 모른다. 좋은 화장실이야말로 위생과 직결되고 위생은 삶의 질을 평가하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해서 매우 중시했다. 걱정(?)을 풀어내는 곳이 바로 해우소다.

그래프를 보면, 러시아는 전체 인구 중 15.1%가 실내 화장실 없이 생활하고 있다. 36개국 중 꼴찌다. 러시아 인구가 1억4000만명쯤 되니까 2000만명이 수세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뒷일(?)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러시아는 추운 나라인데 집안에 수세식 화장실이 없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러시아에서 살아본 독자가 있으면 설명해주면 좋겠다. 터키의 비율도 꽤 높다. 12.7%가 집 밖에 화장실을 두고 있다. 칠레(9.4%) 브라질(6.7%)도 36개국 중 비율이 높았다.

의외인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이 브라질 다음이다. 인구의 6.4%인 750만명이 집안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선진국치곤 높은 수치다. 위생 관념이 철저한 일본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다소 충격(?)적이다.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일까? 아마도 이들은 옛날식 화장실을 고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화장실 문화 수호 내지 보호랄까? 쪼그려 앉아서 일을 보는 것이 과학적으로는 더 쾌변을 유도한다고 하지 않든가.

해부학적으로 인간의 대장은 쪼그려 앉을 때 대장 마지막 부분이 수직으로 열린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항문과 대장 마지막 연결 부위가 유(U)자형으로 휘어져 닫혀 있는 모양을 유지한다. 신체 공학상 좌변기에 앉으면 U자가 펴지지 않아 쾌변을 보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좌변기에 앉더라도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는 게 좋다고 권한다. U를 수직으로 열리게 하기 위해서란다.

전통식이 장 건강에 좋다?

옆으로 조금 샜다. 한국은 어느 수준일까? 일본보다 두 단계 아래다. 헝가리(4.8%)와 비슷한 4.2%다. 5000만명 중 2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집안에서 혼자 쓸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을 두고 있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는 실외 화장실을 제외했다는 것을 알아두자. 공동 화장실도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수치는 OECD 평균인 2.4%보다 높다. 집안에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에 관한 한 서구 국가의 지수가 낮다. 멕시코(4.2%)와 이스라엘(3.7%)만 빼면 유럽 회원국과 미국은 2% 아래다. 벨기에가 2.0%로 조금 높을 뿐 호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은 거의 1~0%대다.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는 0%다. 미국은 0.1%. 주마다 편차가 크다. 알래스카주가 3.8%로 가장 높았다. 그럼 세계적으로 몇 %의 인구가 실내 화장실 없이 살고 있을까?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대략 13%(약 9억4000만명)가 실내 화장실 없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OECD 화장실 통계는 이렇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화장실 형태와 장(臟) 건강 간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최근 몇몇 조사와 장과 관련한 책을 읽어보면, 전통적인 쪼그려 앉기식이 좌변식보다 장 건강에 좋다고 한다. 숙변이 장 안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데 통계적으로 좌변기를 쓰는 서양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먹는 음식이 장 건강에 많은 영향을 주지만 화장실도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이렇다저렇다 해도 화장실은 인류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