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태 IT과학부 기자) 잠재적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던 과학기술전략회의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동시에 열었다. 자신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과기 정책 의결기구인 국가과학기술심의회(국과심)를 두고 대통령 직속의 과기 정책 회의를 개최한 황 권한 대행의 광폭 행보를 두고 과학기술계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과학기술전략회의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국민 경제 활성화 방안’과 ‘미래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빅데이터 구축 활용방안’, ‘정부 연구개발(R&D) 혁신 점검 결과’가 안건에 올랐다. 안건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는 먼저 제조와 ICT를 결합한 스마트 공장을 올해 안에 5000개, 2020년까지 1만개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당초 현재 2800곳에 이르는 국내 스마트 공장을 2020년까지 총 3000곳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 일정을 단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전용 대출제도도 올해부터 운용키로 했다.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 등 주력 제조업이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핵심기술 개발과 공공구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계획도 나왔다. 우선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 등 4차 산업혁명과 수출의 기반이 되는 이른바 ‘ICBM’ 분야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로 했다. 특히 파급 효과가 큰 빅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범부처 빅데이터 정책 컨트롤타워’를 연내 만들기로 했다. 소형원자로, 소형 인공위성, 위성영상 등 원자력과 우주 분야 기술 수출을 확대하고 출연연 기술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출연연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TLO(기술 이전 전담조직)를 출범시키는 방안도 논의됐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를 비롯해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내에서도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열린 이날 회의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주요 내용이 정부가 이전에 내놓은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다 권한과 임기가 한정된 권한대행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던 두 회의를 굳이 한날 동시에 개최한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기술전략회의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주요 과학기술 현안을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며 과학기술 정책 심의와 결정을 하는 국과심과 별도로 신설한 조직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역시 1987년 출범한 뒤 대통령 과학기술 정책 자문 역할을 수행해오는 법적 기구다.
미래부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에 따르면 당초 이 행사는 지난 1월초 청와대 미래수석실이 국무조정실에 행사 개최를 요청하면서 준비가 시작됐다. 당초 안건은 정부 R&D 혁신 점검 결과와 박 대통령 지시로 지난해 마련한 9대 전략과제 추진 현황 점검이었다. 하지만 행사를 2주 앞둔 이달 초 황 총리 측에서 돌연 안건을 ‘과학기술과 ICT를 활용한 국민 경제 활성화’로 급히 바꿨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과학기술과 ICT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며 여기에서 경제활력의 돌파구를 찾겠다”며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대신 ‘과학기술과 ICT를 활용한 경제 활성화’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주제가 갑자기 바뀌면서 회의를 준비하는 관계자들도 안건을 다시 만드느라 진땀을 뺐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계를 끌어안으려는 황 권한대행의 이례적인 행보는 부쩍 눈에 띈다. 지난달 18일에는 대전 유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방문해 정부 출연연구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미래성장동력분야' 연구현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젊은 과학자 15명을 불러들여 식사를 함께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지난 1월말 국무조정실에서 황 권한대행이 젊은 과학자들과 식사자리를 갖고 싶다는 전화를 해왔다”며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40세 미만 과학자를 뽑아달라는 구체적 조건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는 “이번 정부 들어 과학기술 정책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많은 상황에서 권한대행이 갑작스럽게 과기 정책을 챙기는 듯한 행보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권한대행의 역할과 임기가 한시적인 상황에서 나온 정책이 과연 실효성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끝)/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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