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땐 외국 투기자본이 10대 기업 중 6곳 감사 싹쓸이"

입력 2017-02-15 03:03
한국경제연구원, 감사 분리선출·집중투표 시뮬레이션

대주주 의결권 묶이는데 투기자본은 '자유자재'
헤지펀드가 삼성전자·현대차 이사 선임 가능
민주당 "직권상정 추진할 것"…재계 초비상


[ 장창민/유승호 기자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4일 상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재계는 패닉에 빠졌다. 기업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기업 이사회가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서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10대 기업(매출 기준) 중 삼성전자 등 여섯 곳의 감사위원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상법 개정안 직권상정 추진”

우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상법 개정안 처리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을 통해 재벌 총수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회사에 대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정경유착과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할 수 없고 소액주주 권리도 보호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재벌개혁을 내세워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최근 여야 4당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에서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일부 내용에 의견 접근을 이뤘음에도 김진태 의원 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계속 반대하자 우 원내대표는 상임위원회 의결 절차를 건너뛸 수 있는 직권상정 카드를 꺼냈다.

야당이 주도하는 상법 개정안은 크게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사외이사 규제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한국경제연구원은 이 중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투기자본이 연합해 10대 기업(공기업 및 금융회사 제외) 중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기아자동차, SK이노베이션, 현대모비스 등 여섯 곳의 감사위원을 모두 장악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들 기업 여섯 곳의 경우 대주주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선출하는 단계부터 3%로 의결권이 제한돼 실제 지분보다 의결권이 10~50%가량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지분 쪼개기(3% 이하)를 통해 의결권 제한 규정을 피할 수 있는 외국 투기자본은 서로 연합해 원하는 사람을 감사위원으로 앉힐 수 있다. 감사위원은 기업당 3~5명 정도 있다.

삼성전자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전략적 투자자, 국내 기관투자가 등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29.7%(1월 말 기준)인데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가 도입되면 의결권 비중은 17.5%로 떨어진다. 삼성전자 지분을 들고 있는 외국 기관의 의결권 지분은 도입 전후 모두 28.7%를 그대로 유지한다. SK(주)는 대주주 등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이 56.2%에서 15.6%로 뚝 떨어지게 된다. 반면 외국 투자자는 의결권 변동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이사 과반수 투기꾼 손에

감사위원 분리 선출뿐만이 아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네 곳에서 외국 투기자본이 힘을 모아 원하는 이사를 무조건 한 명(감사위원 제외) 뽑을 수 있는 것으로 한경연은 분석했다. 외국 투기자본 지분율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최소 비율(1/총 선임이사 수+1)을 넘어서면 ‘몰아주기’식 투표를 통해 무조건 한 명 이상을 원하는 사람으로 선임할 수 있다는 게 한경연의 설명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가 함께 도입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김윤경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이사 네 명을 새로 선임한다고 가정하면 외국계 펀드가 지분 20%+1주를 확보하면 원하는 사람을 최소 한 명 이상 이사로 선임하는 게 가능해진다”며 “결국 이사회가 7명으로 구성된 회사라고 가정하면 4명(감사위원 분리 선출 3명+집중투표제 1명)을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로 선임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선 다중대표소송제도와 전자투표제도 기업 경영을 뒤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송 남용 가능성이 크고 투기자본 등의 악의적 루머 공격 때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감사위원 분리 선출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도록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 대주주는 3% 이상 지분을 가졌더라도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 집중투표제

두 명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한 주당 새로 뽑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예컨대 이사 세 명을 뽑을 때 한 주를 가진 주주는 세 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 다중대표소송제

모회사 주식을 일정 규모 이상 보유한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불법행위 등에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장창민/유승호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