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을 초청한다면

입력 2017-02-14 18:14
초청 없었지만 초청받아도 못 가
김영란법이 정상외교까지 묶어
만나기만 해도 로비·청탁이래서야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


호화 별장으로의 초대, 전용기 에어포스원 동반 탑승, 27홀의 동반 골프라운딩, 각각 두 차례의 오찬과 만찬, 그리고 정상회담 직전 19초간의 긴 악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난 10~12일 2박3일간의 만남은 세계적인 화제를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플로리다)에 아베 총리 부부를 초청해 초호화 접대를 했다. 트위터에 “아베 신조 총리를 미국에 초청해 최고의 시간을 갖고 있다”고 올리기도 했다.

회담이 끝나자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세계는 부러워했다. 영국 언론조차 “테리사 메이 총리가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지만 식사는 한 번에 그쳤다”고 비교해 보도했다.

한국으로선 언감생심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국내 정치가 안정을 찾고, 트럼프가 한국 대통령을 마라라고에 초청했다고 가정해보자. 안타깝지만 그럴 경우에도 한국 대통령은 초청에 응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때문이다. 아베 총리 방미 때도 논란이 불거졌듯 외국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별장에 묵으며 숙박비를 내는 건 안 된다.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서 금전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한 미국 헌법 탓이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돈을 내면 세금이 마라라고 소유주인 트럼프에게 돌아가 문제가 된다.

그래서 트럼프는 아베 총리의 숙박비를 본인이 냈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은 이런 호의도 받을 수 없다. 김영란법에 저촉돼서다. 대통령도 선출직 공무원으로 김영란법 대상이고, 속인주의에 따라 해외에서도 법은 적용된다. 게다가 비용을 내주겠다는 미국 대통령은 직무 관련성이 있기도 하다. 골프 비용도 마찬가지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청탁금지법을 제정할 때 외교와 관련해 면책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런 조항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골프나 리조트 숙박 없이 그냥 만나 회담하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요타가 10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일본 기업이 미국에서 일자리 70만개를 만들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은 “한국 어느 기업이 미국에 언제 얼마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공무원이 기업 대관 담당자에게 이를 물어보고 부탁하면 언제든 로비와 청탁, 외압 등으로 간주될 수 있다.

삼성과 금융지주회사 설립, 순환출자 해소 등을 논의한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모두 압수수색을 당하고 위원장 등은 소환됐다.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규제 대상인 기업과 협의하는 건 통상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유권해석을 요청하고 ‘만나 뵙고 설명드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돌아간다면 어느 누가 서로 만나겠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만나 소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이뤄지면 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지금은 만남 자체를 김영란법으로 규제한다.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따지지 않고 만나면 로비, 청탁이라고 의심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나 관료는 시장을 모르고, 시장을 아는 기업인은 의원 관료를 만날 수 없다면 법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까.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