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양심에 맡긴다" 서울대 '아너 코드' 도입

입력 2017-02-14 18:03
수정 2017-02-15 05:37
"부정행위·논문 표절 않겠다" 서약…자연대 1학기부터 무감독 시험

MIT 등 미국 대학 대부분 시행…국내선 한동대 등 일부만 도입
서울대 "자연대부터 우선 적용"…다른 대학으로 확산될지 '주목'


[ 황정환 기자 ] 서울대가 자연대학을 시작으로 명예 규율인 ‘아너 코드(Honor Code)’를 도입한다고 14일 밝혔다. 아너 코드는 구성원이 단체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준칙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시험 부정행위나 논문 표절, 데이터 위·변조 등 학문의 정직성을 훼손하는 모든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맹세’다.

서울대 자연대는 올해 1학기부터 아너 코드를 시행하고 이와 연계해 ‘무감독시험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김성근 자연대 학장은 “아너 코드는 학생 스스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게 하려는 문화운동”이라며 “학생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보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부정행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너 코드는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폭넓게 도입하고 있다.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 도덕성뿐 아니라 표절·인용에 관한 엄격한 준칙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선 사관학교들과 한동대(경북 포항) 정도만 도입하고 있다. 한동대 신입생들은 매년 아너 코드를 지켜 지식인으로서의 윤리와 책무를 다하겠다고 서약한다.

서울대는 연구 실험 윤리가 중요한 자연대에 우선적으로 아너 코드를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자연대 사례가 다른 단과대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 본다”며 “단과대마다 학문 특성에 맞는 준칙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장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서울대 내부에선 시험 부정행위 등 비윤리적인 행위가 잦다는 지적이 많았다. 2015년에는 한 통계학 수업에서 일부 학생이 이의신청 기간을 이용해 답안지를 바꿔치기 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치의학대학원생 10여명이 현장실습 평가서류를 조작하다 적발됐다.

서울대가 지난해 학부생 276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정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만 잠시 생각한다’거나 ‘별생각 없이 넘어간다’는 응답 비율이 55%에 달했다.

자연대는 이 같은 현실을 ‘역발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아너 코드를 마련하기로 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자연대의 실험이 서울대 전반으로 확산될지 관심”이라며 “서울대에 아너 코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다른 대학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