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 첫 소송
소액주주 "불필요한 자회사 설립
오너 자녀들에 특혜 제공" 주장
회사측 "법적으로 문제 없어"
주가는 2년여 만에 '반토막'
[ 정소람 기자 ] 자동차 패널 제조 상장회사 일지테크의 소액주주들이 회사를 상대로 수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오너 자녀들이 운영하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는 이유다. 중소·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첫 주주 소송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소액주주 “자녀 회사에 일감 몰아줘”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태석 가치투자연구소 대표 등 일지테크 소액주주 3명은 최근 “이사의 의무를 위반하고 기존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쳤으므로 3억원을 배상하라”며 이 회사 구본일 회장과 장남인 구준모 대표를 상대로 대구법원지방법원에 3억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냈다.
코스닥 상장사인 일지테크는 자동차용 패널을 만드는 현대자동차 1차 협력업체로, 1986년 설립돼 2015년 기준 매출 3000억을 넘긴 중견 기업이다.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오너 일가 자녀 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앞서 구 회장은 2011~2013년 각각 케이앤씨, 디앤피, 아이제이에스라는 비상장 자회사 3곳을 설립했다. 장남인 구 대표를 비롯해 구 회장의 세 아들이 각 회사의 대주주 겸 사내 이사를 맡았다.
문제는 3곳이 일지테크와 거의 같은 내용의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액주주는 “기존에 본사가 멀쩡하게 만들고 있던 제품을 이들 3개 자회사에 제조를 맡기더니 나중에 이 제품을 일지테크 본사 및 중국 법인이 다시 사들이는 구조로 바꿨다”며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불필요한 회사를 세워 자녀들에게 특혜를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케이앤씨는 설립 4년 만인 2015년 매출 401억원, 영업이익 158억원을 올리는 등 3개 회사 모두 매출 수백억원대를 올리고 있다. 이들 3개 회사 모두 매출의 100%가 일지테크 납품에서 나온다는 게 주주 측 주장이다.
이들은 “결국 일지테크의 사업 기회를 유용해 회장 자녀들의 회사가 부당 이득을 챙긴 것”이라며 구 회장 등의 이사 의무 위반을 주장했다. 이들이 사내 이사가 지니는 △선관 의무 △충실 의무 △경업 금지 의무 △자기 거래 금지 의무 등을 어겼다는 게 골자다.
일지테크 주가는 2014년 말 1만4000원을 웃돌았으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된 이후 꾸준히 떨어져 6000원대에 머물러 있다.
◆회사 측 “법률 위반 없다”
이번 소송은 중소·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소액주주의 첫 소송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앞서 대기업인 신세계그룹(광주신세계), 현대차그룹(현대글로비스) 등도 이 같은 편법 상속 논란을 겪으며 소송전을 치른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들 사례의 경우 사업 기회를 유용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일지테크는 좀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모회사와 사업 내용이 100% 일치하는 자회사를 만들었다는 사실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액주주 측을 대리하는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상당수 중소기업이 대기업 집단보다 감시가 적다는 점을 틈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가업승계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며 “이번 소송 결과가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지테크 측은 “법적으로 문제없이 계열사 거래로 진행한 부분”이라며 “주주들의 소송과 제안에 대해 법과 절차에 따라 대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