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스티븐 존슨 지음 / 홍지수 옮김 / 프런티어 / 444쪽 / 1만6000원
패션·음악·게임 등 6개 주제로 재미가 혁신 부른 사례 소개
17세기 커피하우스 모인 유럽인 토론 즐기며 지적 호기심 공유
주식거래·보험사 설립에 기여
"오락거리로 폄하되는 놀이가 결국 미래 예견하는 발명품"
일상은 반복이다. 반복은 자칫 무료함과 지루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만 재미와 놀라움을 찾아 나선다. 어떤 사람은 게임에서, 어떤 사람은 놀이공원에서, 또 어떤 사람은 유행하는 상품에서 재미와 놀라움을 찾는다. 이런 개인의 행동이 역사 발전의 엄청난 동력과 연결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을 확장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우리에게 역사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엄숙한 그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역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경제, 정치, 혁명, 발명, 과학, 기술 등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것이다. 역사는 자유와 권리, 그리고 빵과 같은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한 기나긴 투쟁으로 서술된다.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이 역사를 바라보는 앵글은 색다르다. 장난과 유희의 역사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존슨의 최근작 《원더랜드》는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온 놀이와 경이로움, 희열의 역사를 파헤친다. 핵심 메시지는 다음의 몇 문장에 담겨져 있다. “즐거움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는다는 것을 상세히 설명하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오락거리로 폄하되는 장난과 유희가 결국 미래를 예견하는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놀이의 역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그냥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기회를 잡는 일과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툭 하고 한마디를 던진다. “인간이 노는 방식에 주목하라.” 사람들이 많이 노는 곳과 놀고 싶어 하는 곳에서 기회가 생겨날 것이라는 의미다.
인간은 실용적인 목적에 집중할 때보다 즐거움이나 오락을 위해 무언가를 발명하거나 공유할 때 훨씬 더 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킨다. 저자는 이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그는 패션과 쇼핑, 음악, 맛, 환영, 게임, 공공장소 등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얻은 희열이 혁신을 가져오고 역사를 바꾸어 놓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목화로 만든 옥양목은 아무리 빨아도 색상이 그대로 유지된다. 옥양목의 부드러운 촉감과 화려한 문양도 유럽인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옥양목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광으로 동인도 회사는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옥양목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는 유럽에 유통된 이후 150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17세기에 화려하게 꾸며진 상점들이 등장하고 나서였다. 상점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보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공간이었다. 상점에 전시된 천에 반한 귀부인들이 점포를 둘러보며 소일하는 데 빠져들면서 옥양목의 인기가 더불어 올라갔다. 이는 훗날 유통업이라는 서비스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실용과 필요가 전부는 아니었다. 유희와 경이로움, 미의식이 더해진 결과였다. 새로운 경험과 신기함과 아름다움 그 자체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역사를 추진하는 강력한 동력이었다.
음악은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음악은 인간에게 색다름을 제공한다. 컴퓨터 발명에는 뮤직박스가, 움직이는 기계의 탄생에는 피리 부는 목동이 기여했다.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정보 공유 네트워크를 낳았다. 최초의 정보 공유 네트워크는 음악 파일을 교환하기 위해 개발됐다. 즐거움이 기술 발전을 촉진한 흥미로운 사례다.
혀에 강력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향신료다. 색다른 맛을 얻기 위해 인간은 목숨을 걸었다. 새로운 체험, 새로운 욕망, 새로운 맛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정향(丁香)의 원료인 작은 꽃봉오리를 운반하기 위해 말라카 해협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 6000마일이나 되는 장거리 교역망과 항해지도를 만들어 냈다. 향신료에 매료된 인간들은 온갖 것을 발명해 냈다. 새로운 형태의 독도법과 항해법, 주식회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회사도 만들어 냈다. 하찮게 보이는 향신료 맛이 세계 교역로 개척에 방아쇠를 당겼다.
선술집은 순수한 여흥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사람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는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공간을 선물했다. 이런 공간에서 주고받는 토론의 즐거움과 지적 호기심은 공공박물관과 보험회사, 주식거래, 주간지 등을 만들어 내는 데 기여했다.
색다른 체험을 통한 즐거움은 역사 발전의 동력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어디서 색다른 체험을 구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와 사물,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공병호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