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역이 돼버린 '쌀 신화' 못 깨면 농업개혁 불가능하다

입력 2017-02-09 17:25
정부가 쌀값 하락, 재고 증가 등 여건 변화에 대응한다며 3년 단위로 보완하겠다던 중장기 쌀 수급안정 대책을 앞당겨 내놨다. 벼 재배면적을 더 줄이고 남아도는 쌀은 해외로 보낸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 탓에 만성적인 공급과잉을 보이는 쌀 수급문제에 대한 근본적 수술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벼 재배면적을 지난해 77만9000ha에서 올해 74만4000ha로, 그리고 내년에는 71만1000ha로 줄이겠다는 계획만 해도 그렇다. 지방자치단체별 목표 면적을 설정하고 감축 실적을 공공비축미 매입, 농산시책 평가 등에 반영한다지만 언제든 농민들이 반발하면 그뿐이다. 기업농 육성만 하더라도 농민단체 눈치를 살피느라 한발짝도 못 나아가는 게 지금의 한국 농업정책 아닌가.

근본적으로는 쌀을 농산물의 하나가 아니라 성역으로 취급하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쌀은 언제나 정부보조금으로 떠받쳐야 하는 게 당연시돼 왔다. 개방과 경쟁, 소비자의 선호 변화를 외면한 채 보호와 지원에 안주하다 보니 쌀의 경쟁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여기에 자급률만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면서 쌀이 오히려 골칫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국가 전체 농업예산의 40%를 차지한다는 쌀은 한국 농업 전체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농업을 살리려면 쌀을 포함한 농업 자체를 개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 농업에는 왜 제조업 부흥전략을 이식하지 못하는지 답답하다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한국 농업이 실패하는 것은 제조업처럼 수출 지향, 과감한 시장개방, 고급화 전략으로 가지 못한 탓이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은 수출, 개방, 고급화로 농업의 산업화를 크게 성공시켰다. 왜 한국 농업만 변화를 거부한 채 그대로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하기에 따라서는 농업을 청년과 투자가 몰리는 성장산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그 핵심적인 과제가 쌀에 대한 신화를 깨는 일이다. 쌀부터 시작해 농업을 개혁하자. 거대 소비시장이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