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환율 공격' 받은 독일 "유로화 저평가된 것은 ECB 책임"

입력 2017-02-06 19:12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미국 비판 인정하면서 책임 떠넘겨
독일 투자 늘려야 무역 불균형 해소…총선 앞둔 집권여당이 걸림돌


[ 이상은 기자 ]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사진)이 유로화 가치가 독일 경제력에 비해 너무 낮으며, 독일의 무역흑자는 이로 인한 결과라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그런 통화정책을 결정한 것은 독일이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31일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큰 폭으로 떨어뜨려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하자 독일 책임은 아니라고 답변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촉발된 보호무역 및 통화절하 논쟁을 통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내적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양상이다.


◆“무역흑자 원인은 통화정책”

쇼이블레 장관은 이달 4일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유로화 환율은 엄밀히 말하자면 독일 경제의 경쟁력에 비해서는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ECB 통화정책의 열성팬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미국발 금융위기와 남유럽 재정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시작할 때 나는 그 정책이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결과로 인해 내가 비판받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는 ECB가 금리를 올리지 않아 물가가 상승하고 쥐꼬리만 한 이자에 의존하는 연금생활자들이 궁핍을 감내해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독일이 낮은 통화 가치를 즐기고만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모건스탠리 자료를 인용해 유로화의 ‘공정가치’는 1유로=1.28달러로 현재가치(1.08달러)보다 훨씬 높으며, 독일 경제엔 1.50달러가 적정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볼프강 뮌하우 FT 칼럼니스트는 6일자 기고문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이 지지 기반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 무역흑자를 유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명목환율이 아니라 실효환율을 기준으로 본다면 독일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분석했다.

◆중국보다 흑자 더 내는 독일

독일은 지난해 세계 최대 경상수지 흑자국이다. 독일 민간 싱크탱크인 Ifo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은 2970억달러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중국(Ifo 추정치 2450억달러), 한국(한국은행 잠정치 기준 987억달러)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독일 국내총생산(GDP) 대비 8.9% 수준이다.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유로존 출범(1999년) 후 지속적으로 커졌다. 독일 정부는 독일 경제가 탄탄해서 그럴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론 유로존 내 ECB의 통화정책을 공동으로 적용받으면서 재정정책은 제각각 쓰는 구조,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한 EU 정책, 금융위기 후 남유럽의 재정 취약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계속 돈을 풀어야 했던 상황 등이 맞물린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독일이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유럽 재정취약국에 자국처럼 긴축재정정책을 쓰라고 강요하는 데 따른 불만도 ‘유로존의 과실을 독일이 독차지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뮌하우 칼럼니스트는 “경제학자들은 독일이 투자를 늘려 (다른 유로존 국가와 유로화 가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이는 독일 내 정치 상황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이 무역흑자 정책을 바꿀 방법은 오는 9월 선거를 통해 긴축재정을 고집하는 메르켈의 CDU 대신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 등 극좌 연정이 구성되거나 반(反)유로 정당인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뮌하우는 EU 집행위원회가 해마다 독일에 이 문제를 지적하는데도 독일이 무시하고 있다며 “EU 집행위와 달리 미국은 독일을 움직일 지렛대(압박 수단)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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