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필즈상 수상자, '반트럼프의 아이콘' 된 까닭?

입력 2017-02-05 20:14
외신들 "트럼프의 반이민·과학정책 이란 출신 마리암 교수 등 배출 막아
미국 과학발전 심각한 위기 초래할 것"


[ 박근태 기자 ] 영국 일간지 가디언 웹사이트에는 1주일 넘게 2년 전 기사가 ‘많이 읽은 기사’로 오른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마리암 미르자카니 스탠퍼드대 교수(사진)의 수상 소식을 다룬 기사다.

그는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받았다. 여성이 상을 받은 건 1936년 필즈상이 제정된 뒤 78년 만에 처음이었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지난해 미국과학한림원 정회원이 됐다는 소식만 전해졌을 뿐 한동안 수상 후에도 조용히 수학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과학 정책을 비판하는 과학계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그가 주목받은 건 출신 국적과 경력 때문이다. 애틀랜틱 등 외신들은 트럼프 정부가 이란, 이라크를 포함해 7개국 이민자의 입국을 거부한 반(反)이민 정책이 미국 과학 발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하며 상징적 인물로 미르자카니 교수에게 주목했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1977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샤리프공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다. 이란은 2015년 미국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주요 6개국과 핵협상을 타결하고 37년 만에야 국제 사회로 복귀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적대 관계를 맺은 기간에도 이란 학생의 유학을 막지 않았다. 이란 출신 학생들은 훗날 과학자로 활동하며 미국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 레이저를 이용한 라식 수술을 처음으로 개발한 고람 페이먼 툴레인대 교수도 이란 출신이다. 그는 이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독일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전문의 수련 과정을 마쳤다. 2014년 일어난 에볼라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추적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알아낸 파르디스 사베티 하버드대 교수, 미국 화성탐사선인 스피릿과 오퍼튜너티를 주도한 피로우즈 나데리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도 이란 출신 학자다. 필즈상을 받은 최초 여성 수학자를 배출한 영예를 미국에 안긴 것도 이민 정책이 한몫했다. 지난해에만 이란을 포함해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진 7개국 1만7000명이 미국에서 유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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