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월가에 '선물'…금융규제 완화 착수

입력 2017-02-05 19:57
'도드프랭크법' 재검토 명령

2008년 금융위기 후 도입된 법
대형은행 자본확충 의무화 담겨 미국 재무부에 개정안 마련 지시

골드만삭스·JP모간 주가 급등…민주당은 '제2 금융위기' 경고


[ 뉴욕=이심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월가의 족쇄로 작용해온 금융규제법을 완화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골드만삭스와 JP모간 주가는 곧바로 급등하며 반색했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정부가 월가 이익을 대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맹비난했다.

◆오바마 정부의 금융규제 무력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도드프랭크법’으로 불리는 ‘월가 개혁 및 소비자보호법’의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미 재무부는 120일 안에 도드프랭크법 개정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내 주변에는 멋진 사업을 하지만 은행에 대한 규제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에서) 도드프랭크법의 상당 부분을 삭제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전략정책포럼 위원장인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과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 등 월가의 ‘큰손’도 참석했다.

도드프랭크법은 오바마 정부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정한 광범위한 금융규제법으로 2010년 7월 발효됐다. 월가 대형 은행들의 ‘대마불사(大馬不死)’ 관행을 막기 위해 대형 은행의 자본 확충을 의무화하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을 지정해 스트레스테스트를 하도록 했다.

또 은행 분할과 업무정지 등의 권한을 금융당국이 갖도록 했다.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던 장외파생상품 거래와 사모·헤지펀드, 신용평가회사 규제와 감독도 신설했다. 외신들은 행정명령이 은행의 투기적 거래를 못하도록 제한한 ‘볼커 룰’을 겨냥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신의성실 규정’을 담은 신탁 규제 시행을 연기하라는 내용의 ‘대통령 메모’에도 서명했다. 신의성실 규정은 금융회사가 투자자문을 할 때 회사보다 고객 이익을 최선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 4월부터 시행될 이 규제로 금융서비스 업계가 타격을 받지 않을지 재검토하라는 취지다.

◆민주당·소비자단체는 강력 반발

월가는 예상보다 빨리 시행된 금융규제 완화에 환호했다. 월가는 도드프랭크법이 금융회사에 대한 ‘오바마케어(전 국민 건강보험개혁법)’라며 강력히 비판해왔다.

이날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4.57%, 모건스탠리는 5.46% 급등했다. 씨티그룹과 JP모간체이스 주가도 3%대의 급등세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은행이 기업에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도록 금융규제를 푸는 것이 미국 경제와 근로자를 돕는 방법”이라고 강조해왔다.

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탐욕과 무분별한 생각으로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월가 은행가와 로비스트들은 샴페인 잔을 부딪치고 있을지 모르지만 미 국민은 2008년 금융위기를 잊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금융소비자단체인 파이낸셜포럼도 “트럼프 정부가 골드만삭스에 금융규제 권한을 넘겨주고 대형 은행이 고객의 돈을 훔쳐가도록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내정자가 백악관과 내각에서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콘 위원장은 최근 WSJ와의 인터뷰에서 “수천억달러의 규제 비용을 은행에 전가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가 더 나은 상품 선택권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행정명령만으로 도드프랭크법을 무력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공화당의 법 개정 움직임에 맞선다는 계획이다. WSJ는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금융감독당국의 업무에 영향을 미치고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인사 등을 통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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