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기업에 손짓하는 트럼프, 대선주자들은 말이 없고…

입력 2017-02-05 17:1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을 향해 투자, 일자리 창출 등을 강하게 독려하면서 국내 대기업도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삼성이 미국에 가전공장을 지을 것’이라는 보도를 보고 고맙다는 트윗을 날리고, 삼성은 긍정도 부정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삼성은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미국 내 가전공장 설립을 사실상 결정하고 부지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차는 향후 5년간 미국에 31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한 바 있다. LG전자 또한 올 상반기에 미국 내 생산공장 건설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체인)을 미국 중심으로 돌려놓겠다는 방침이 확고해 국내 대기업의 미국 내 투자 확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는 어떤 형태로든 국내 투자와 생산, 일자리 등에는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대선주자를 포함해 그 어떤 정치인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입만 열면 대기업더러 투자를 해라, 일자리를 만들라 떠들던 이들이 왜 꿀먹은 벙어리가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국내 정치인들이 재벌개혁을 경쟁적으로 들고 나오는 걸 보면 남아있는 기업조차 붙잡기는커녕 아예 해외로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형국이다. 기업을 온갖 규제로 옥죄는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개정안 등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공화당은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20%로 낮추고 수출로 발생한 매출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고, 제너럴일렉트릭(GE) 보잉 등 ‘주식회사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은 이를 지지하는 ‘아메리칸 메이드 기업연합’을 결성했다.

대기업을 무슨 마녀사냥이라도 하듯 몰아내겠다는 국내 정치권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쩌면 재벌개혁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미국 등 밖에서는 국내 대기업을 끌고 가지 못해 저토록 안달이니 이대로 가면 국내에서 대기업은 절로 사라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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