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장작 오븐에 1분…살짝 검게 타야 '진짜 이탈리아 피자'

입력 2017-02-05 16:36
수정 2017-02-19 16:42
'글쓰는 셰프' 박찬일의 세계음식 이야기 - 이탈리아 ①



이탈리아에 드나든 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현지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일한 것도 3년 가까이 된다. 이탈리아 음식은 오랫동안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10년 이후로 급격히 변화했다. 아마도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의 발달, 이탈리아인의 오랜 관습을 허무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그 원인이 아닌가 한다. 3년 전 밀라노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점심시간에 이탈리아 최고 금융가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쏟아져나왔다. 과거 같으면 파스타와 간단한 샐러드를 파는 토속 식당에 가거나, 길거리 피자와 샌드위치를 먹거나 했을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웬만해서는 다른 나라 요리를 잘 안 먹기 때문이다(중국집은 좀 예외다). 그런 그들이 일식당과 정체도 모호한 중화풍 요리(핫치킨과 쌀밥), 라멘집과 스시집에 가는 게 아닌가. 물론 내용을 보면 좀 특이하다. 일식당은 모두 중국인 아니면 그들이 고용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요리했다. 다시 말해서 일식이라고 부르기에는 정체성이 모호한 요리였다. 그런데도 자리는 만석이었다. 라멘집은 아예 줄을 섰다. 주방장은 이탈리아인. 물론 런던에서 일본인 주방장에게 배웠다고 한다. 제법 그럴 듯했지만 일본의 라멘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어쨌든 이탈리아인의 먹거리가 바뀐다. 오랜 세월동안 조금씩 외래음식을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혁명에 가깝게 변한 적은 없었다. 물론 이런 변화는 밀라노라는 첨단 국제도시의 상황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변화를 눈여겨보면서 이탈리아 음식 여행을 떠나보자.

가벼운 빵과 함께 커피 한잔 이탈리아 조식

이탈리아 공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입국장을 나가자마자 영업하고 있는 진짜 이탈리아 바에 들르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커피 마시는 곳을 바(bar)라고 부른다. 간단한 술과 음식도 있지만 대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른다.

바는 하루종일 사람들로 붐빈다. 엄청난 양의 커피를 머신으로 뽑아낸다. 그 향이 입국도 하기 전 공항의 보세구역 안으로 퍼져 들어오는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이 바를 굳이 갈 필요는 없다. 불친절하고 게다가 값도 비싸다. 그래도 마셔볼 만하다. 귀국한 이탈리아인들이 급히 이 바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황홀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인이 오랜 외국생활 끝에 귀국해서 김치나 여타 한국음식을 찾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시간대에 따라 이 바의 모습도 달라진다. 시내 바도 마찬가지다. 우선 아침과 오전 이른 시간대에는 카푸치노와 카페라테가 제일 많이 팔린다. 이탈리아에서는 오후에 이 커피를 잘 팔지 않는다. 관광지역에서 외국인이 찾으면 팔긴 하지만 ‘정통’은 아니다. 이 커피는 아침과 오전 커피다. 커피라기보다 배를 채우고 영양을 흡수하기 위한 음식물이다. 우유가 들어갔기 때문이고, 이탈리아인은 아침을 가볍게 먹는 까닭이다.

이 커피에 크루아상이나 브리오슈 같은 달고 가벼운 빵을 곁들이곤 한다. 이탈리아 전국 어디든 아침에는 이 메뉴를 판다. 호텔 조식(대개 현지인의 음식이 아니라 영국인이 먹을 법한 요란한 아침요리) 대신 현지인의 아침을 체험해보려면 호텔 근처 식당을 찾아야 한다. 이탈리아인다운 기분이 들 것이다. 맞다. 이제 당신은 이탈리아를 여행할 진짜 준비가 되었다고나 할까.

한 가지 팁. 시내 바에서는 이런 커피를 테이블에 앉아 마시면 보통 5000~6000원을 받는다. 베네치아 같은 곳에서는 1만원도 받는다. 대신 ‘방코’라고 부르는 스탠딩 바에서 서서 마시면 아주 싸다. 비싸 봐야 카푸치노 한 잔에 2.5유로 정도다. 에스프레소는 2유로 미만. 게다가 맛도 끝내준다. 크루아상을 곁들여 호화롭게 먹어봐야 5유로 미만이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인 밀라노나 베네치아에서도 말이다!

장작 오븐에 강하게 굽는 이탈리아 진짜 피자

이탈리아인은 대개 점심을 가볍게 먹는다. 과거 농경사회와 소도시 사회의 전통이 있는 지역에서는 점심시간이 길고 많이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점심도 간소해졌다. 글 서두의 밀라네제(밀라노 사람)처럼 가벼운 점심을 찾는다. 우선 샌드위치다. 서서 먹기도 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정찬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서서 가볍게 때우는 것도 잘한다. 샌드위치를 음료도 없이 길에서 먹는다. 이 샌드위치(파니노라고 부른다)는 속에 치즈나 햄, 간단한 재료를 넣는데 빵이 좋기 때문에 맛도 뛰어나다.

점심에 피자를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할까. 관광지에서는 점심에도 둥근 장작 피자를 팔지만 보통의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장작피자는 저녁에만 먹을 수 있다. 점심은 조각피자를 먹는다. 가게서 앉아 먹기도 하고, 테이크아웃을 해서 먹는다. 직장인이 많은 곳은 잘 찾아보면 뷔페식이나 간이 셀프서비스 식당도 많다. 값도 싸고(대개 15~20유로) 맛도 괜찮다. 무엇보다 현지인과 어울려 그들의 일상식을 먹어본다는 재미가 있다. 흥미로운 건 점심에도 술을 판다. 이탈리아인은 와인이나 맥주는 절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다. 목을 축이거나 가벼운 음료처럼 즐긴다. 술꾼들은 독한 위스키나 그라파, 허브 술(체리술, 압상트 같은 술)을 마신다.

저녁에 좋은 피자를 먹는 것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는 재미다. 오후 6시면 이미 줄을 서기 시작하고, 7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겨울이고 추운 북부지역은 조금 더 시간대가 빠르다. 남부쪽은 더 늦게 시작한다). 한국 피자와 다른 점이 많다. 우선 만드는 방법이다. 대개 장작 오븐인데 손으로 둥글게 쳐서 오븐에 넣는다. 밀대를 쓰면 ‘반칙’이다. 숙련된 피자 기술자들이 반죽을 빠르게 펴고, 소스를 바르고 토핑 얹어 오븐에 넣기까지 30초 정도밖에 안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