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8명 기업가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김태만 장현정이 ‘철학이 있는 도시, 영혼이 있는 기업’(국제시장에서 해운대까지·도서출판 호밀밭)이란 이름으로 총체적 위기의 시대, 지역과 경제를 통해 삶의 기본기를 되돌아보기 위해 저술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와 난국을 표상하는 지표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배려가 상실되고 생명이 경시되는 사회는 공존공생의 논리가 뿌리내릴 여지가 없다. 도시의 건강성은 무엇보다 생산과 소비의 건강성에 기인한다. 도시에 양질의 기업이 자리 잡고 성장할 때 청년들도 몰려들어 도시에 활력이 생기고 에너지가 넘쳐난다. 건강한 일자리가 고갈된 도시에는 건강한 도시문화가 성립되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나름의 철학과 영혼이 있는 기업이 필요한 이유다.
정신이 빈곤한 사회, 철학이 부재하는 도시는 필연적으로 물질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인문정신의 회복이다. 기업 경영에도 인문정신의 회복은 절실하다. 이제 더 이상 물질만능만을 추구하는 개발주의나 성장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의 진화가 필요하고, 국가가 주도하던 개발독재를 벗어나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발전으로 전화해가야 한다. 부산이라는 지역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총서를 준비하고 있는 신라대학교 부산학센터가 그 첫 번째 연구총서로 부산의 기업을 선택해 대한제강, 넥센타이어, 강림CSP, 욱성화학, 팬스타, 은산해운항공, 성창기업, 동신유압 등 부산을 대표하는 8개 기업의 기업가들을 만나 의미를 살폈다.인학자들이 기업가들을 만나 도시의 다양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것은 소중한 기회였다.저자들은 이 책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나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역사적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이 크게 대접받았던 적은 드물다. 봉건사회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해 상인을 천하게 여겼다. 지금은 상황이 크게 변했다. 모든 것의 중심에 경제가 있고, 기업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선망하는 동경의 대상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존경한다는 아이들이 더 많은 현실이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압축적 근대화를 겪으며 수많은 부조리를 겪어온 한국사회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눈은 더욱 곱지 않다. 하지만 어떤 시대였든 정치와 외교는 물론, 사상과 예술까지도 그 밑바탕에는 물질의 논리가 강력하게 작동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최전선에 있는 기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무조건 비난하거나, 무조건 동경하기만 해온 것은 아닐까. 격변하는 21세기, 더구나 지역에서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근대화 속에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진짜’ 기업가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일을 해왔고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오늘날 모든 일은 ‘장(場)’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어쩌면 ‘시장’인지도 모른다.
부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기업의 고향이다. 해방과 근대화,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한국 경제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된 부산. 이 책은 그런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과 창업주들의 이야기를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소개한다.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대한상사를 전신으로 한 대한제강의 오완수 회장과 용달차라는 말을 처음 만들고 세계 각국에서 ‘타이어 강’으로 불리며 세계 타이어시장의 판도를 바꾼 넥센타이어의 강병중 회장은 전통을 지키되 현실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혁신을 주도한 ‘전통혁신형 기업가’의 범주로 묶었다.
한국 무계목 강관 시장의 70%를 점유한 철강물류기업을 경영하면서도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유기농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강림CSP의 임수복 회장과 삭막한 금사공단에 예술지구-P를 만들어 신선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한국 안료업계 1위 업체인 욱성화학의 변준석 대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과 창조정신, 사회공헌에 대한 투철함 등을 들어 ‘가치창조와 사회공헌형 기업가’의 범주로 묶었다.
부산은 바다와 철도 육로, 하늘길이 열려 있는 천혜의 교통요지이다. 물류와 운수가 필연적으로 발달하지 않을 수 없는 지역이다. 어릴 적부터 바다와 배에 대한 꿈을 키워오다 한국을 대표하는 크루즈선사를 일궈낸 팬스타의 김현겸 회장과 만나는 사람들마다 초긍정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며 최근 더욱 무서운 기세로 성장 중인 은산해운항공의 양재생 회장은 지역현실이나 특징에 착안해 지역에 밀착하면서도 국제적인 관계망 속에서 더욱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밀착형 국제화 기업가’의 범주로 묶었다.
끝으로 부산 최초의 백년 기업이 된 성창기업의 정해린 전 회장과 ‘4관 3려’라는 독특한 경영철학으로 역동적인 경영을 보여주고 있는 동신유압 김병구 대표이사는 장수기업으로 성장이 크게 기대되는 기업들로 ‘창조적 지속가능형 기업가’라는 범주로 묶었다.
기형적으로 중앙 집중화 된 한국사회에서 지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소기업에 대한 오해, 전통제조업에 대한 오해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다들 세련된 서비스업에만 주목하며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전통제조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장이 옮겨가고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일 뿐, 여전히 모든 산업의 근간은 제조업이랄 수 있다. 화려한 것만 쫓는 시대, 이 책을 통해 지역과 경제, 나아가 우리 삶의 기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저자들은 기대했다.
지은이 김태만은 1996년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20세기 전반기 중국소설과 풍자정신>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 재직하면서 중국문학과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생존과 변화의 기로에 선 중국지식인>(2004), <중국에게 묻다>(2012), <쉽게 이해하는 중국문화>(2011) 등을 저술했고, <바다가 어떻게 문화가 되는가>(2008), 중국 당대 시인선집 <파미르의 밤>(2011), 중국당대 미술평론집 <홀로 문을 두드리다>(2012) 등을 번역 출간했다.
장현정은 부산대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여러 대학교에서 문화사회학을 가르치는 한편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기획과 콘텐츠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철학에세이 <소년의 철학>, 사회학에세이 <록킹소사이어티>, 산문집 <무기력 대폭발> 등을 저술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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