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유재혁 기자 ]
장편 다큐멘터리 ‘뚜르:내 생애 최고의 49일’(사진)이 개봉한 지난 1일 밤 서울 신촌의 한 극장. 영화가 끝날 즈음,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지막이 새어 나왔다. 극장 문을 나서는 이들의 눈동자는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암 환자의 감동적인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각자 짊어진 삶의 고민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질책받은 게 더 컸다.
이 영화는 희귀암 환자인 윤혁이 2009년 한국인 최초로 ‘투르드프랑스(Tour de France)’를 완주하는 과정을 담았다. 투르드프랑스는 매년 7월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의 3500㎞를 일주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사이클 대회. 프로 선수들도 두려워하는 ‘악마의 레이스’다.
아마추어 보디빌더이자 체육 교사를 꿈꾸던 윤혁은 육종암을 판정받고 두 차례 수술로 5개의 장기를 잘라냈다. 하지만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자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이 레이스에 뛰어든다. 이유는 단 하나. ‘그냥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서’다. 아직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데 말이다. 그의 간절함은 하늘을 움직인다. 약간의 후원을 받아 의사와 정비공, 페이스메이커, 현지 가이드 등 10명의 팀을 꾸린다.
윤혁은 자전거에 ‘希望(희망)’이란 스티커를 붙였다. 희망의 레이싱인 셈이다. 그러나 역경들이 먼저 찾아왔다. 정비사 겸 동반 레이서가 넘어져 손가락 뼈가 부러졌다. 차량 위에 묶어 이동 중이던 사이클의 핸들이 교각에 걸려 부서지고 만다. 팀원 간에는 자금 부족 문제로 갈등도 일어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윤혁 자신이다. 어느날 갑자기 자전거를 타기 싫어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마지막 남은 인생의 첫날’이란 절박함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피레네 산맥의 고산지대를 오르면서 숨이 헉헉 막힐 때, 윤혁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오히려 기뻐한다.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밭과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빛나는 햇살 아래 만끽하는 ‘행운’도 암 덕분에 누린다. 윤혁은 외친다. “야, 공기 죽인다. 암세포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윤혁은 레이싱을 마치고 1년쯤 뒤 27세로 영면했다. 인터넷에는 관객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마지막 20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현재가 선물임을 깨닫게 해준 영화”.
이 영화는 2009년부터 1년여간 촬영한 뒤 6년간의 편집 작업 끝에 완성됐다. 자금 부족으로 제작진이 각자 생업에 매달려야 했다. 연출자도 임정하 전일우 박형준 김양래 등 4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흥행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주인공의 감동적인 삶과 죽음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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