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테마주 '지엔코' 폭락…매도 잔량만 2800만주
황교안주 '인터엠' 한달새 123%↑…안희정주株 'SG충방'도 24% 급등
대선 석달 전 투자하면 '상투'…지지율 하락→불출마→주가폭락
결말 뻔한데 불나방처럼 뛰어들어…테마주 투자손실 99%가 '개미'
[ 김우섭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발표가 난 지난 1일 오후 3시30분. 국내 최대 주식 사이트 팍스넷 토론방은 평소 하루 1~2건에 불과하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게시글이 30건 넘게 올라왔다. 황 대행 관련 테마주 소개와 함께 “보수는 황 대행으로 단일화됐다” 등의 글이 다수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테마주 시장을 떠나지 못한 개미(개인투자자)의 ‘폭탄 돌리기’가 다시 시작됐다”고 말했다.
허망한 정치 테마주
이른바 ‘반기문 테마주’는 2일 개장과 동시에 하한가를 면치 못했다. 전무이사가 반 전 총장과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성문전자와 반 전 총장의 외조카가 대표인 것으로 전해진 지엔코 등이 대표적이다. 지엔코는 매도 잔량만 2800만주 쌓인 채 장을 마감했다. 이날 주식시장에서 하한가를 기록한 13개 종목 모두가 반기문 테마주였다.
반면 반 전 총장이 빠진 대선 국면에서 여권 주자로 급부상한 황 대행 관련 테마주는 급등했다. 대표가 황 대행과 성균관대 동문이라고 전해진 인터엠은 이날 9.93% 올랐다. 연초 3025원이던 이 회사 주가는 황 대행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한 달 만에 123%나 올랐다. 이 회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억원으로 2014년(33억원)보다 수익성이 나빠졌지만 주가수익비율(PER)은 551배까지 치솟았다.
충청 표심 일부가 이동할 것이란 전망에 안희정 충남지사 관련 테마주도 올랐다. SG충방은 대표가 운동권 출신으로 안 지사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이날 24.20% 올랐고 백금T&A는 23.82% 상승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승세는 언제든지 급락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반복적 패턴이다.
과거 학습효과도 실종
실적과 상관없이 오른 대선 테마주는 통상 ‘지지율 하락→대선 불출마 또는 후보 단일화→주가 폭락’의 공식으로 움직이는 특성을 보인다.
직전 18대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대선을 석 달 앞둔 2012년 9월14일. 안철수 후보가 몸담았던 안랩(당시 안철수연구소)은 1년 전 3만원대에서 12만9300원까지 올랐다. 또 다른 테마주 써니전자는 500원대 ‘동전주’에서 1만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둔 11월23일 안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한 뒤 안랩은 74.90%, 써니전자는 90.34%까지 하락했다. 대선을 3개월 정도 앞두고 테마주를 산 사람들의 피해가 특히 컸다는 분석이다.
황 실장은 “‘4말5초’(4월 하순~5월 초순)의 벚꽃 대선을 가정할 경우 현 시점에서 대선 테마주에 투자하는 건 극히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선거 때마다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테마주 투자는 이번 19대 대선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의 대선 테마주로 분류된 체시스는 김 의원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작년 11월23일 24.79% 하락했다. 지난달 26일 불출마를 선언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테마주 토탈소프트도 2일까지 10% 이상 떨어졌다.
테마주 투자 손실은 대부분 개인투자자가 떠안는다.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정치 테마주 16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 테마주 투자로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 비율은 전체의 99.6%에 달했다.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비중(계좌수 기준)은 65% 정도다. 테마주에 손을 댄 개인투자자 중 73%가 손해를 봤고, 거래대금이 5000만원 이상인 고액 투자자는 93%가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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