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 신동주의 '이상한 빚테크'

입력 2017-02-02 17:10
수정 2017-02-06 09:37


(정인설 생활경제부 기자) 2000만원짜리 자동차를 산다고 가정해보죠.

여유가 있다면 현금 박치기를 하는 게 제일입니다. 현금이 부족하다면 신용카드 할부나 캐피털 할부를 이용하는 게 좋겠죠. 카드 한도가 안된다면 좀 더 금리가 높은 카드론 같은 대출을 받아야겠죠.

그런데 현금도 있고 카드 할부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굳이 카드론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죠.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지난달말 증권사들로부터 2500억원의 주식담보대출을 받아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2126억원의 증여세를 대신 냈습니다. 작년 6월 검찰 조사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서미경씨 등에게 불법으로 주식을 준 사실이 적발됐죠. 이걸 신동주 전 부회장이 대납한 겁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매년 롯데 계열사들로부터 수백억원의 배당금과 급여를 받아 현금 여유가 있습니다. 게다가 거액의 세금을 낼 때 할부로 분납할 수 있는 제도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연부연납제도’라는 거죠. 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할 때 최대 5년간 총 6번에 걸쳐 나눠낼 수 있는 제도죠.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카드 할부 이자로 비유할 수 있는 가산세율(연 1.8%)이 붙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미래에셋대우증권과 대신증권 등에서 몇 %대로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는 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 증권사도 개인정보라며 금리 공개를 거부합니다. 다만 다른 증권사들은 신동주 전 부회장 정도면 연 4% 안팎으로 대출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가산세율(1.8%)보다는 높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빚테크’ 배경이 무엇인 지 궁금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장남으로서 선의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세금을 대신 냈다고 치면 본인의 뜻에 반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신격호 총괄회장이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죠.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자기 돈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세금을 대납했다면 세법상 증여로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증여를 받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막대한 증여세를 내게 되는 거죠. 물론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국세청 고시 이자율인 연 4.6%의 이자를 지급하면 됩니다.

나름 재무적 여력이 있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이런 거래를 원했을까요. 신격호 총괄회장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롯데 경영권 분쟁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의 눈과 귀는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렇습니다. “2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한꺼번에 내려면 어떤 형태로든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한 자산을 일부라도 처분해야 하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신동주 전 부회장이 대출 받아 대신 내는 게 낫다”는 거죠.

신동주 전 부회장 주장대로 자식된 도리를 했다고 치면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있습니다. 바로 채권자 권한입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채권자면 신격호 총괄회장은 채무자가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한 자산을 담보로 잡거나 질권 설정을 하면 일정 부분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죠.

아시겠지만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주식 부자입니다. 한국 롯데 계열사 중 상장사만 해도 롯데제과(6.83%) 롯데쇼핑(0.93%), 롯데칠성음료 보통주(1.3%), 롯데칠성음료 우선주(14.16%)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일 롯데의 지주회사인 일본롯데홀딩스 지분도 0.4% 가량 가지고 있죠.

그렇다면 신동주 전 부회장이 채권자로서 신격호 총괄회장 보유 주식 처분을 주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소송 같은 법률적 절차가 선행돼야 하겠지만 롯데 지배구조의 핵심인 롯데제과나 롯데쇼핑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 만큼 의결권 행사도 가능해집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서둘러 세금을 일시에 완납한 배경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처한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신격호 총괄회장은 법원에서 성년후견인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결정이 내려져 한정후견인(사단법인 선)이 지정된 상태입니다.

이르면 상반기 중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납니다. 그렇게 되면 신격호 총괄회장의 재산 처분 권한은 한정후견인인 사단법인 선으로 넘어갑니다. 만약 사단법인 선이 한정후견인으로 본격 활동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단법인 선이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장남이니 신격호 총괄회장의 세금을 대신 납부해주십시오”라고 했을까요. 신격호 총괄회장이 채무자가 돼도 괜찮고, 신격호 총괄회장의 주식이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귀속돼도 좋다고 했을까요.

지난달 25일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거액의 주식담보대출 받은 이유에 대해 “신규 사업 등을 검토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뒤 같은 달 31일 “주식담보대출을 받아 신격호 총괄회장의 증여세를 대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선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말을 바꿨다고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빚 내서 아버지 세금 대신 납부해주고 아버지 보유 자산의 처분권을 갖는 게 ‘새로운 사업’일 수 있는 거죠. 결과에 따라 엄청난 레버리지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신동주 전 부회장 입장에선 남는 장사죠.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벌이고 있는 롯데 경영권 분쟁이 더 재밌어지는 이유입니다. (끝)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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