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내려라"…트럼프, 이번엔 제약사 압박

입력 2017-02-01 19:15
수정 2017-02-02 09:00
제약사 CEO와 백악관 회동

'당근과 채찍' 약발 받을까

의약품 원재료 80% 해외생산 "미국서 만들면 규제 없애주겠다"
공장 옮기면 생산비용 높아져 약값 인하 으름장에 업계 '골머리'


[ 김동욱 기자 ]
자동차업계에 이어 제약업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산 구입·미국인 고용(Buy American, Hire American)’ 압력의 타깃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값을 내리고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라”고 제약업계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1980년대 이후 조세 부담을 덜기 위해 아일랜드 등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미국 제약업체들은 큰 ‘골칫거리’가 추가됐다며 울상이다.

◆‘미국서 생산’은 만병통치약?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존슨앤드존슨, 머크, 암젠, 일라이릴리, 노바티스 등 글로벌 주요 제약회사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자리에서 “제약업계가 약품 생산을 미국에서 하길 원한다”며 “천문학적인 약값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줄곧 “제약산업이 미국에 귀환하도록 해야 한다”거나 “제약사들이 공급하는 약품 대부분이 미국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다”는 발언을 하는 등 제약산업의 미국 ‘귀환’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그는 제약업계에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규제를 철폐해 미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허가가 빨리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제약회사들이 미국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도록 할 것”이라는 ‘당근책’도 제시했다.

FDA에 따르면 미국 내 판매 약품의 60%가량은 미국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원재료의 80% 정도가 해외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항생제의 대부분은 중국과 인도 등에서 수입한 원료로 만들어진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의약품 완제품도 급증세를 보여 2015년 수입액(861억달러)이 2005년(390억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은 2위 독일(459억달러)을 멀찌감치 따돌린 세계 최대 의약품 수입국이기도 하다.

◆‘골칫거리’ 접한 제약업계

트럼프 공세의 ‘예봉’을 접한 미 제약업계는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로버트 브래드 암젠 CEO는 “캘리포니아 등에서 미국인 일자리를 1600개 추가로 늘리겠다”며 트럼프 달래기에 나섰다. 셀진과 머크, 일라이릴리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혁신과 세금 감면 방침이 매우 고무적’이라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냈다.

문제는 미 제약업계가 1980년대 이후 비용 절감과 세금 감축을 위해 아일랜드와 인도, 싱가포르, 중국 등지로 꾸준히 생산시설을 이전했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생산거점을 다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중국 등 신시장 개척을 위해서도 해외 생산시설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화이자는 중국 시장을 겨냥해 지난해 6월 3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항저우에 복제약 생산시설을 건설키로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제약사 Abb바이도 최근 3억2000만달러를 들인 싱가포르 공장을 완공하고 본격적인 제품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주장대로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높이더라도 ‘약값 인하’라는 공약과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존 테일러 그린리프헬스 의약담당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약시설 미국 회귀 정책은 자칫 생산비용을 높여 약값이 인상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프 웨이슬 언스트앤영 싱가포르법인 헬스케어 담당은 “강제적인 약값 인하와 생산시설 이전 등은 미국 의료시스템을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