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가 1억원 쓴 유전체 검사 '10만원 시대' 열린다

입력 2017-02-01 19:07
마크로젠, 미국서 최신 유전체 분석장비 도입

검사 기간도 2주일서 하루로
가격 6년 만에 1000분의 1로 '뚝'…'맞춤형 치료' 본격화

유전체 분석 SW 국산화율 5% 미만
관련 장비·시약…서둘러 개발해야


[ 조미현 / 김근희 기자 ]
국내에서도 10만원대에 유전체를 분석하는 시대가 열린다. 30억쌍에 이르는 인간 유전자 염기서열을 100달러에 분석할 수 있는 장비가 조만간 국내에도 도입되기 때문이다. 미국 유전체 분석장비업체인 일루미나가 개발한 이 장비는 국내 기업을 포함해 세계 6개 업체에만 우선 공급된다. 이를 계기로 2001년 1000억원에 달했던 유전체 분석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개인별 맞춤형 치료가 본격화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노바섹 대당 10억~12억원

정현용 마크로젠 대표는 1일 “일루미나에서 노바섹 세 대를 주문했다”며 “다음달 국내로 들어오면 테스트 등을 거쳐 서비스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루미나는 세계 유전체 분석 장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노바섹은 일루미나가 개발한 최신 유전체 분석 장비다. 기존 장비는 한 사람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데 2주가량이 걸렸다. 비용은 1000달러였다. 노바섹은 하루 만에 100달러의 비용으로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 ‘꿈의 장비’로 불리는 이유다. 대당 가격은 모델에 따라 10억~12억원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세운 첸·저커버그 재단도 노바섹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일루미나가 발표한 100달러는 재료비 같은 분석단가를 말하는 것”이라며 “유전체 분석 시장이 급격히 커지는 데 대응하기 위해 장비를 선제적으로 구입했다”고 했다.

유전체 분석 장비의 기술 발전 속도는 눈부실 정도다. 1990년만 해도 한 사람의 유전체 전체를 해독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비용은 30억달러(약 3조원)가 들었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데 10만달러(약 1억원)를 썼다. 2014년 1000달러 시대가 열린 데 이어 3년 만에 100달러 시대를 앞두게 됐다.

질병 예방 및 치료 산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체에는 개인의 신체 및 질병 정보가 총망라돼 있다. 예컨대 앤젤리나 졸리 유전자로 불리는 ‘BRCA’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이 유전자를 겨냥해 난소암 치료제를 개발했다. 분석 비용이 낮아지면서 환자의 유전체를 분석해 유전자 변이에 따른 맞춤 치료 및 치료제 개발이 보다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음달부터 국내에서 유전체 분석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환자 부담은 50만원 수준이지만, 앞으로 이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지난해부터 허용된 혈당 등 12개 검사로 제한된 민간 바이오 기업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 가격도 낮아질지 주목된다.

“관련 산업 육성 시급”

유전체 분석 산업이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련 장비와 시약 등을 서둘러 국산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시장은 일루미나 로슈 써모피셔 등 일부 다국적 기업이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 병원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분석 장비 126대는 모두 해외에서 들여왔다. 유전체 정보 분석 소프트웨어의 국산화 수준도 5% 미만이다. 정부 차원에서 국산화 및 육성 전략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세계 진단 시장은 지난해 601억달러 규모였다. 2018년에는 669억달러로 11.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미현/김근희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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