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권 입맛 따라 개편
국정철학 내세워 쪼개고 붙이고 30년간 반복
시너지보다는 '한 지붕 두 가족' 갈등만 불러
"공무원 줄세워 길들이기" 세종관가 불만 커져
[ 황정수/김주완 기자 ]
미래창조과학부 A국장은 공직생활 약 28년간 다섯 번 짐을 쌌다. 그가 속한 조직은 정권 교체 때마다 ‘유목민’처럼 ‘이 부처에 붙었다, 저 위원회로 갔다’를 반복했다. 새로운 동료들은 회식 때마다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다. 술자리의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실·국 간 업무 협조는 원활하지 않았다. ‘적통(嫡統)’이 아니란 이유로 알게 모르게 인사와 관련한 불이익도 있었다.
A국장은 올해 짐을 한 번 더 싸야 할 처지다. 정권이 바뀌면 소속 부처가 ‘해체 대상 1순위’로 꼽혀서다. A국장은 “불안감에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각 대선주자가 내놓고 있는 정부 조직개편안 때문에 세종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정책 효율성과 일관성을 감안한 ‘최소한의 개편’이 아니라 ‘공직사회 흔들기’ 차원의 대규모 조직개편이 5년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줄 세우고 부려먹겠다는 개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차기 정부 조직개편안을 공개한 데 이어 각 대선 후보 진영이 자체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는 데 대해 공무원들의 불만은 한가지로 모아진다. “공직사회를 또 줄 세우고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체’ 등 정부 조직을 찢고, 없애고, 붙이는 내용만 있고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직사회 문제의 해법은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국장은 “조직개편안을 공개하고 인사·승진에 몸 단 공무원들을 줄 세워 공직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태가 5년마다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조직법을 보면 현재 존재하는 17개 부(部) 중 설립 이후 명칭이 바뀌지 않은 부처(격상 제외)는 국방부, 법무부, 통일부, 환경부 등 네 곳뿐이다. 13개 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합집산을 겪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작년 10월 공무원 31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 네 명 중 세 명이 ‘재직 중 조직개편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4회 이상 조직개편을 경험한 응답자도 26%에 달했다.
◆출신 조직 간 갈등 부추겨
정권마다 조직개편의 이유로 ‘효율성’을 내세운다. 하지만 역대 사례를 보면 조직 떼고 붙이기는 ‘시너지’보다 ‘한 지붕 두 가족’ 같은 어정쩡한 상황만 만들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출신 조직 간 갈등을 부추겨 ‘비효율성’만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대(大)부처주의’를 내세워 여러 부처를 합쳤던 이명박 정부가 대표적이다. 산업자원부의 산업, 무역·투자, 에너지정책 부문, 정보통신부의 정보기술(IT) 산업정책과 우정사업 부문 등을 합친 ‘지식경제부’, 농림부와 해양수산부의 ‘수산’ 업무가 합쳐진 ‘농림수산식품부’ 등 거대 부처가 탄생했지만 첫해부터 흔들렸다. 업계에선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터져나왔다. 부처 내부에선 한정된 승진 기회를 두고 출신 부처별로 ‘모임’을 만들고 치열하게 다퉜다.
◆권력 눈치 안 보게 하는 게 중요
행정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역대 정권의 조직개편 빈도와 정도의 적절성’에 대해 설문한 결과 15.9%만 ‘적절했다’고 답했다. 한 대학의 행정학과 교수는 “새로운 집권세력의 조직개편을 당연한 권력행사이자 정치행위로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외부와의 소통 없이 소수 비전문가가 모여 조직개편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공무원들은 “일 안 하는 공무원 50% 줄여도 좋으니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적어도 1급이나 차관급까지는 임기를 보장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경제부처의 1급 공무원은 “공무원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승진할수록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흔들리지 않고 정책을 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수/김주완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