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시대 일자리, 노동개혁서 나온다

입력 2017-01-31 17:56
"산업현장은 구조조정, 고용엔 한파
저생산성 장시간 근로방식 버리고
적대적 노사관계 적극 개선해야"

권혁 <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대학가에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리곤 한다. 고시 합격이 아니다. 대기업에 취업해서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6년 실업자가 100만명이 넘었다. 청년층 실업률은 9.8%다. 청년 10명 중 1명은 실업자인 셈이다. 공식 통계가 그렇고, 체감실업률은 34%를 훌쩍 넘길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마당에 조선과 금융, 전자까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기다리고 있다.

외부 여건도 좋지 않다. 우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출범은 발등의 불이다. 자국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분야와 나라를 불문하고 ‘미국산’과 ‘미국근로자’를 강요하고 있다. 유럽과 중국, 일본도 제 살길 찾느라 분주하다. ‘각자도생’의 국제질서 앞에 경제전망은 ‘시계 제로’다. 더 큰 변수는 4차 산업혁명이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자동차 자율주행기술은 이미 상용화 일보 직전에 있다. 병원 환자들도 오랜 경륜을 가진 의사의 판단만큼이나 수많은 데이터로 무장된 ‘인공지능 의사’의 판단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삶에는 분명 축복이 되겠지만 일자리에 관한 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마침 한국고용정보원의 발표가 흥미롭다. 취업자 1575만명의 일자리를 자동설비가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취업자의 70%에 이르는 수치다. 예측은 예측일 뿐이라며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600명이 매달리던 공정을 불과 10명이 수행하게 된 독일 스포츠화 제조업체의 얘기는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일본은 총리까지 직접 나서서 일자리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고용시장에 닥칠 변화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우리는 ‘최순실’만 바라보고 있다. 이 사태만큼이나 그것이 남길 후유증이 걱정되는 이유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기 마련이다. 지금 고용한파는 다르다. 기약이 없다. 말 그대로 ‘고용빙하기’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첫째, 낮은 생산성을 가지고 오랜 시간 일하는 방식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야근과 특근이 ‘특혜’요 ‘기회’인 현실은 바꿔야 한다.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일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지는 만큼 근로시간이 줄어든다고 임금손실이 발생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특근과 야근, 위험작업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몫이다. 일하는 방식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는다. 미리 연습해 둬야 한다.

둘째, 노사관계에서 ‘승부’의 프레임은 내려놓아야 한다. 서로를 싸워서 이겨야 할 ‘적’으로 여기는 한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 재앙이 될 공산이 크다. 인공지능에 대한 맹목적 선호를 가져올 게 틀림없다.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며 존중해야 한다. 당장 조선업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노사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회사에 그 비싼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할 선주는 결코 없다.

셋째, 역설적이지만 인공지능의 시대는 곧 ‘휴먼메이드’ 시대다. 인간의 노동만이 갖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 그것을 더 가다듬어야 한다. 상투적인 직업교육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 ‘노동에 대한 존중’ 말이다. 밀린 임금을 주느니 벌금을 내는 게 더 나은 현실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고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낮은 임금을 주는 현실도 사라져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노동을 가벼이 여기는 순간 인공지능은 매몰차게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

최순실은 ‘노동개혁’이라는 단어조차 듣기 거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가 정답일 수는 없다. 노·사·정 모두 변해야 한다. 무릇 아프지 않은 개혁은 없다. 서로 남 탓 하면서 가능한 개혁도 또한 없다. 미래 일자리 전쟁터에서 노·사·정은 ‘운명공동체’다.

권혁 <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