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스마트 안경

입력 2017-01-31 17:55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안경을 발명한 장인이 누군지는 기록에 없다. 단지 13세기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인이라는 사실만 확인될 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베네치아는 유리 제조 기술에선 독보적이다. 무색투명 유리도 그곳에서만 만들어졌다. 그 기술자는 광학적 원리를 유리 기술에 접목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안경을 발명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를 꺼렸다. 마녀사냥이 판치던 당시 유럽에서 안경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악마의 유물로도 여겼다. 광학적 원리를 밝힌 철학자 베이컨조차 마술을 부리는 이단아로 마녀 사냥을 당할 뻔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인이 자신의 이름을 비밀로 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 ‘신물(神物)’은 급속히 퍼졌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였던 것이다. 1445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개발하면서 그 필요성은 점점 확산됐다. 안경 장인들로 구성된 안경 길드는 엄청난 부와 힘을 갖게 됐다. 16세기 들어 이들 길드가 모인 독일 뉘른베르크에선 대량 생산이 이뤄졌다. 외알 렌즈나 뿔테안경 등도 대중화됐다. 독일은 지금도 안경산업에 경쟁력을 갖고 있다. 정작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선 안경 발전이 더뎠다. 귀족층의 애호물이자 표상으로만 활용됐다. 스페인 여성들이 수다를 떨 때 안경을 착용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우리나라에서도 17세기 이후 안경이 유행했지만 주로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 안경은 눈을 가리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무례한 것으로 인식됐다. 양반층만 착용할 수 있다는 예법까지 있었다. 조선 말기가 돼서야 일반인이 쓸 수 있었다. 20세기는 패션과 디자인 시대였다. 새로운 스타일이 사람들의 구매력을 집중시켰다.

구글은 6년 전 안경에 디지털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안경 시대를 열었다. 안경의 기능성을 확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이 나올 때부터 의문이 따랐다. 무거운 게 치명적이었다. 팀 쿡 애플 CEO는 “안경이 필요 없는 이들이 구글 안경을 쓰려고 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결국 구글은 구글식 스마트 안경을 포기했다.

최근 카를로스 마스트라제로 미국 유타대 교수팀이 자동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스마트 안경을 개발했다고 한다. 착용자가 보고 있는 물체와의 거리를 적외선으로 측정해 렌즈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다초점 안경 등의 불편이 줄어들 모양이다. 지금도 라식이나 노안 수술 등에는 인공수정체가 활용되고 있다. AI(인공지능)형 렌즈가 사람 눈에 들어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안경의 진화는 끝이 없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