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전문가' 강남훈 한신대 교수 인터뷰
대선공약 핫이슈 기본소득, 포퓰리즘인가 미래기본권인가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기본소득. 일을 하건 안 하건, 소득이 있든 없든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지급되는 일정한 소득을 뜻한다. 첫째, 보편성. 심사 없이 준다. 둘째, 무조건성. 받는 대가로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셋째, 개별성. 대표자, 이를테면 세대주에 주는 게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준다.
태생은 해외다. 스위스는 작년 6월 기본소득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월 2500스위스 프랑(약 290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안은 반대 77%로 부결됐다. 반면 핀란드는 올해부터 국민 2000명에 월 560유로(약 70만 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다. 물론 한국과는 복지 수준이나 역사적 배경이 달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게 ‘한국형 기본소득’이다. 대선공약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성남시 청년배당 실험을 했던 이재명 시장이 앞장섰다. 생애주기별 기본소득 100만 원에 국토보유세 재원으로 30만 원을 더해 1인당 연간 130만원씩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같은 야권 주자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공짜 밥’이라며 비판했다.
익숙한 구도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진보와 보수. 식상한 프레임에 갇힌다. 정말 기본소득은 그런 것일까. 다른 측면은 없을까. 궁금증에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사진)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강 교수는 국내의 대표적인 기본소득 연구자다. 현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의 입에선 의외의 인물들이 튀어나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즈, 실리콘밸리 창업벤처캐피털인 Y컴비네이터의 샘 앨트먼 사장이 줄줄이 거명됐다. 모두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들로 소개했다. 앨트먼의 안은 꽤 구체적이다. 오클랜드 시민들에 월 1500~2000달러(약 170만~2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기획했다.
강 교수는 “미국의 경우 정부가 아닌 벤처기업가들이 주도하는 게 특징”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은 단순 복지 개념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등 기술발전의 부산물로 봤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고 소득격차가 커지는 미래사회를 감안하면 기본소득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본소득을 포퓰리즘으로 재단하지 말자. 보수의 주된 주장이 일자리 창출인데, 미래사회는 일자리가 늘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기본소득 문제를 심도 있게 토의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만난 강 교수의 ‘기본소득 개론’ 강의 같은 인터뷰는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 왜 기본소득인가.
“헌법에 ‘인간답게 살 권리’가 명시됐다. 기본소득을 생활권·복지권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단서다. ‘자유롭게 살 권리’도 있다. 그 시작이 소득이다. 어느 정도의 소득은 있어야 인간답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재산권’ 관점의 접근이 더 이해하기 쉽다. 공유재산의 일부를 마땅히 돌려준다는 면에서 그렇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생활권·복지권 관점으로 접근하면 ‘인간다운 생활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온다. 자유권도 마찬가지다. ‘자유롭게 살 정도의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지급하자’고 할 것이다. 재산권 관점으로 보면 다르다. 모두의 재산에서 나눠 갖자는 것이니까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다.”
- 선별적 복지 관점의 반론이다.
“따지지 않고 조건 없이 모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것. 보편적 복지로써의 기본소득 골자다. 모든 인구를 포괄하는 게 원칙이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갈 수는 있다. 우선 청년이나 농민에게 지급한다든지. 물론 대중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공유재산을 언급했는데, 토지나 환경은 공유재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 기본소득이 꼭 필요한가? 기존 사회보장제도로 커버할 수는 없나.
“전통적 복지국가의 기본철학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 유지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생산활동가능인구 실업률을 3%로 잡고 ‘불행히 3%가 노동하지 않고 있으나 그들도 기회만 주어지면 노동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사를 물어보고 복지를 해주자, 누가 3%에 들지 모르니 노동하는 97%가 십시일반해 도와주자’ 이런 개념이었다.”
- 그렇지.
“3%일 땐 노동의사를 가려내기 쉬웠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복지국가가 위기를 맞는다. 실업률이 10%까지 올라가 선별이 어려워지고, 선별 자체의 행정적 비용도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니 조건을 붙이기 시작하는데 추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그럴 바에야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거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 전통적 복지가 한계에 부딪쳤다는 건가.
“이를테면 ‘워크페어(workfare: 일정 수준 노동을 조건으로 실업자에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 문제가 있다. 선별이 어려우니 힘들거나 부끄러운 일을 연결해준다. 그러고선 응하지 않으면 수당을 끊어버린다. 실제로 독일에서 멀쩡해 보이는 여성이 수당을 타러오니 매춘을 소개해준 사례가 있었다.” (독일은 성매매가 합법이다.)
- 기본소득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베짱이’를 양산하지 않겠나.
“노동유인이 있어야 한다. 전통적 복지구조에선 일을 안 해야 실업수당이 나오고, 일을 시작하면 수당이 끊긴다. 이런 시스템이 반복되면 결국 노동하지 않게 된다. 생각을 바꾸자. 일을 하든 안 하든 수당을 줘야 열심히 일한다. 기본소득으로 얼마간 받으면서 자기가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더 벌 수 있으니까.”
- 역설적이다.
“그래서 핀란드는 ‘일해도 (기본소득을) 줘보자’라며 시작한 것이다.”
- 기초생활보장, 최저임금제도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안은 어떨지.
“허점들이 있다. 경제적 불안정 인구가 굉장히 많아졌다. 기초보장 부양의무 조건을 없애면 어떻게 감당하겠나. 최저임금을 올리면 실업자는 해당 안 되고 영세 자영업자는 오히려 손해 본다. 어느 한쪽만 봐서는 문제해결이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저런 복지제도를 동원해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다 시행하자? 비효율과 혼란이 불가피하다. 그럴 바엔 기본소득 도입이 낫다는 거다.”
현실성이 관건. 문제는 재원이다. 증세가 수반된다면 조세저항이 크지 않을까. 강 교수는 “조세저항이 크다고만 예단하지 말고, 개별적으로 손익을 따져본 후 판단할 수 있게끔 하자”고 답했다. 결국 액수다. 내는 돈(세금)과 받는 돈(기본소득)의 ±총량이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그가 제시하는 기본소득은 1인당 월 30만 원선이다. 5000만 인구에 기본소득(연간 360만 원)을 주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총 180조 원. 강 교수는 시민세 110조, 환경세 30조, 토지세 30조, 기존예산 대체 10조 원을 합산해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핵심인 시민세를 살펴보자. 가계에 귀속되는 모든 소득, 즉 국민소득 중 가계에 지급되지 않은 법인소득과 정부가 받은 이자, 임료 등을 차감한 2018년 ‘가계본원소득’을 1100조 원으로 잡았다. 여기에 세율 10%를 매겨 110조 원을 마련한다는 것.
이를 가구당 상황에 대입해 따져보면 얼추 편익이 산출된다. 3억 원짜리 주택에 거주하는 연간 총소득 9000만 원의 4인가구를 기준으로 잡았다. △시민세 900만 원(세율 10%) △주택에 대한 토지세 88만2000원(공시지가 시가의 70%, 토지가치 부동산의 70% 가정) △환경세 192만 원(가계 부담분 80% 가정)을 합쳐 연간 세금 1180만2000원을 낸다. 반면 기본소득은 1인당 월 30만 원씩 연간 1440만 원을 받는다. 연 259만8000원 이득이란 계산이 나온다.
- 기본소득엔 증세가 수반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나라 빚 더 늘리면 안 된다. 국민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맞다. 예시대로 세금을 연 1180만 원 정도 더 내더라도 총 144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받을 수 있다면 찬성하지 않겠나.”
- 지나친 장밋빛 전망 아닌가?
“세부 변수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이렇게 산출된다. 저도 계산해보고 놀랐다. 연 소득 9000만 원 가구면 상당히 많이 버는 편이다. 그런데도 돌려받는 기본소득이 더 많다. 그만큼 소득구조가 양극화돼 있다는 얘기다. 물론 세금은 정률, 기본소득은 정액이라 소득 상위 1%는 부담이 클 것이다. 식구가 많으면 좀 더 이득을 보겠지.”
- 여전히 포퓰리즘 논란은 남을 수 있겠다.
“선별적 복지를 하기가 힘들어졌다. 상황이나 조건은 논외로 하고, 기초생활수급으로 월 150만 원 정도 탄다고 하자. 최저임금 90만 원 버는 사람에게 세금 걷어 복지 하자고 할 수 있겠나? 노동하지 않으면서 노동하는 사람보다 많이 받는 셈인데.”
- 극단적 사례 같은데.
“그러면 좀 더 현실적으로. 한 달 내내 일해 200만 원 벌었는데 150만 원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를 선뜻 도와주고 싶겠나? 복지가 필요한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공식 실업자 100만, 사실상 실업자 300만, 영세 자영업자와 무급으로 일하는 가족 950만, 비정규직 850만 명…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이상이다. 기존 복지 혜택을 일일이 제공하기 어렵다면 모두에게 세금을 걷어서, 그걸 상회하는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것이 더 공평한 방법 아닐까.”
- 이재웅 다음(Daum) 창업자가 기본소득 얘기를 했다. 복지와는 결이 좀 다르다.
“미국 기본소득 운동의 주류가 그쪽이다. 벤처기업가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일론 머스크, 크리스 휴즈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샘 앨트먼 Y컴비네이터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AI 등 기술발전으로 미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근본 철학이 좀 다르다. 인간생존 보장, 내수 수요창출, 사회안전망 확충 개념이 강하다.”
- 기존 진영논리나 포퓰리즘 프레임에 비하면 확장성 있는 주장 아닌가.
“그런 면도 있다. 요는 ‘합리적 판단’이다. 기본소득이 과연 포퓰리즘인가? 관성적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다. 프레임을 빼고 이미지를 걷어내고 보면, 꼭 그렇진 않다. 이미지 정치가 아닌 토의 민주주의가 정착돼야 기본소득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다. 제가 보기엔 일자리 몇 개 만들겠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포퓰리즘적이다.”
- 기본소득을 연구한 계기가 궁금하다.
“8~9년 전 독일에서 기본소득을 논의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들었다. 국내에 적용해보면 괜찮겠다 싶더라. 기본소득은 활용도가 높은 개념이다. 대선·총선·지방선거가 있는 해에 유권자 1인당 10만 원의 ‘정치 기본소득’을 주거나, 18세 이상 시민 1인당 5만~10만 원씩 ‘언론 기본소득’을 제공해 기사를 후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