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대부가 정말로 살림살이에 관심 없었을까

입력 2017-01-28 19:48


(양병훈 문화부 기자) 조선시대 아낙내가 지친 표정으로 집 마당에 들어섭니다. 손에 들린 보자기 안에는 약간의 쌀이 들어 있습니다. 이웃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양식을 얻어오는 길입니다. 여자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짓고 상을 차려 안방으로 먼저 들여보냅니다. 방 안에는 집안일에 무관심한 남편이 글을 읽고 있습니다. 마당에서 놀던 자식들이 밥 냄새를 맡고 부엌으로 몰려와 배고프다고 떼를 씁니다. 아이들을 먹이고 돌보는 것도 모두 아내의 일입니다.

대중매체에 흔히 나오는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 집의 모습입니다. 사대부는 공부하는 일에만 관심 있고 살림살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는 관심 없는 사람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정말로 그랬을까요.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문헌연구실 선임연구원이 사대부 일상의 모습을 그린 책 ?조선 사대부가의 살림살이?를 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대부의 모습은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많이 다릅니다. 적극적으로 살림살이에 개입해서 먹고 살 방도를 찾는 모습입니다.

저자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글공부를 중시한 건 사실이지만 살림살이 역시 예(禮)의 실천으로 여겨 최선을 다했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퇴계 이황의 ?퇴계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황이 그의 아들 준에게 들려주는 얘기입니다. “살림살이 등의 일도 사람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 아비인 나도 평생 그 일을 비록 서툴게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전혀 하지 않을 수야 있었겠느냐.” 살림살이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근기 남인학파의 종장인 성호 이익의 생각도 비슷했습니다. 이익은 선비들이 학문에만 뜻을 두고 살림살이를 하지 않아 집안이 어지러워지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살림을 돌보지 않으면 조상을 받들 수 없고 부모도 봉양할 수 없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익이 이런 이유로 살림살이를 잘 돌본 조카 이병휴를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성호전집?에 나옵니다.

다산 정약용은 이황이나 이익보다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는 요즘 말로 재테크와 자산 관리를 했습니다. 특히 환금성 좋고 의생활도 해결해줄 수 있는 ‘뽕나무 심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아들 학연에게 뽕나무 농사를 적극 권장합니다. “과일을 파는 일은 본래 깨끗한 명성을 잃는 것은 아니지만 장사하는 일에 가까우나, 뽕나무를 심는 것은 선비의 명성을 잃지도 않고 큰 장사꾼의 이익을 볼 수 있으니 천하에 다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남쪽 지방에 뽕나무 365주를 심은 사람이 있는데, 해마다 365꾸러미의 동전을 얻는다. 1년을 365일로 보면 하루에 한 꾸러미로 식량을 마련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궁색하지 않을 것이요, 아름다운 명성으로 세상을 마칠 수 있으니 이 일을 가장 힘써 배워야 할 일이다.” (끝)/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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