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 삼성과 현대차의 불편한(?) 동거

입력 2017-01-28 00:03


(박재원 산업부 기자) 삼성전자가 9조원의 빅딜로 ‘오디오의 명가’ 하만을 인수하면서 관련 업체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LG전자는 25일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후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가) 장기적으로 상당한 위협 요인”이라며 위기감을 나타냈습니다. “하만은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로, 유럽과 미국 프리미엄 OEM사들의 하이엔드급 인포테인먼트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실제 하만은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보안솔루션 등 전장사업 분야 글로벌 선두기업입니다. 하만/카돈·JBL·마크레빈슨·AKG 등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등 우리가 알만한 오디오 브랜드가 대부분 하만이 소유한 것입니다. 카오디오에서는 뱅앤드올룹슨(B&O), 바우어앤드윌킨스(B&W)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며 전 세계 시장점유율 41%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다. 이들이 공급하는 완성차 업체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볼보·페라리·마세라티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재계 1, 2위를 다투는 현대차 역시 삼성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삼성이 그동안 완성차업체가 축적해온 기술력을 단기간에 빨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 탓입니다. 업계에서는 “카오디오를 비롯한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어 삼성이 전 세계 완성차 업체의 설계도면과 고객 빅데이터 등 속살을 훤히 들여보게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실제 제네시스 EQ900의 경우 하만의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렉시콘’의 스피커 17개가 차량 내부에 탑재돼 있습니다. 이 스피커들의 위치는 차량 내부 인테리어, 다른 전장부품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특히 완성차업체들은 각기 다른 네트워크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를 통해 각사의 네트워크 방식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차량 내부 설계도면 확보도 가능합니다.

이처럼 다소 껄끄러운 사이가 된 삼성과 현대차가 한 지붕 아래 전시장을 꾸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강남역 4번 출구 인근에 있는 현대차 ‘강남오토스퀘어’입니다.

이곳은 음악과 커피·자동차가 어우러진 이색 전시장입니다. 현대차 최초로 서로 다른 3개의 브랜드가 숍인숍 형태로 들어선 공간으로 상징성이 높습니다. 2층으로 구성된 공간을 마련하는 데 현대차는 총 10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1층에는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 하만카돈 오디오 등으로 유명한 JBL그룹이 뮤직큐브(Music Cube)라는 공간에서 하만카돈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클래식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청음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하만을 인수하면서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이 전시장을 없앨 것이란 얘기가 돌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차 측은 “강남오토스퀘어는 자사 유일의 3개 산업군 복합거점”이라며 “상징적인 공간으로 손님도 많아지고 있어 없앨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자동차를 둘러볼 수 있는 이색공간을 시간을 내서 한번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삼성과 현대차의 미묘한 관계가 숨어있는 스토리가 이 곳을 찾는 또 하나의 의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끝) /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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