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재활병원 신설자격 놓고 '한의사 포함' 여부 논란
의료법 개정안 통과 '진통'
[ 임락근 기자 ]
“중증 뇌졸중 환자가 재활치료만 잘 받으면 연간 800억원가량의 간병비를 줄일 수 있다.”
지난 12일 열린 대한재활병원협회 학술세미나에서 나온 주장이다. 심뇌혈관 질환자가 제때 집중 재활치료를 받으면 일상 생활복귀가 빨라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료계에서는 이 때문에 재활병원을 일반병원과 분리해 별도 병원 종류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현실에 맞게 진료비를 올려 진료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다.
제도 개선의 포문은 국회에서 열었다. 지난해 7월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재활병원을 일반병원과 따로 분류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선 의료진뿐 아니라 정부와 여야 모두 입법 취지에 공감했다. 개정안 논의는 일사천리로 이뤄져 넉 달 뒤인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심사 소위원회에 회부됐다.
곧 통과될 것 같던 법안은 뜻밖의 암초에 부닥쳤다. 재활병원 개설 자격에 한의사가 포함되지 않았다며 대한한의사협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한의학에도 재활의학 전문과목이 있고 한의사들도 이미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엔 의사들이 펄쩍 뛰며 반발했다. 한의사들의 재활치료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논리였다. 양측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법안 심의가 보류됐다.
진척이 없자 지난 4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새 법안을 냈다. 양 의원 발의 법안에 ‘한의사도 개설 자격에 포함한다’는 내용을 더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절대 반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활병원 제도 도입을 주장해 온 대한재활의학회는 “한의사를 포함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없던 일로 하자”는 성명까지 냈다.
의사와 한의사 모두 “재활치료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활병원 운영 방안과 구상에 대한 토론은 없다. 설립 자격만 문제 삼고 있을 뿐이다. 소통의 문은 걸어 닫은 채 골든타임 운운하며 밥그릇 싸움에 골몰하고 있다.
양·한방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여부를 놓고도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러는 사이 정작 피해를 입는 쪽은 환자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치료비 부담 등으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의료계는 낮은 보험 수가를 빌미로 2~3개월마다 병원을 옮겨 다니는 재활난민까지 양산하고 있다. 의료계 스스로 재활병원제도 취지가 무엇인지 돌아볼 때다.
임락근 바이오헬스부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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