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문제가 '교육공약 1순위' 돼야 할까
미래 콘텐츠와 투자 실행력이 교육공약 핵심
야권 대선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 폐지론’으로 치고 나왔다. 교육공약 맨 앞에 내세웠다. 정확히는 국·공립대 연합체제를 구축하자는 내용이다. 학벌구조 정점에 위치한 서울대의 폐지가 선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국공립대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제안했다. 큰 틀에서 서울대 폐지론과 대동소이하다.
서울대 폐지론의 기원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저서 《서울대의 나라》에서 “서울대 패권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서울대 폐지론은 학벌철폐 운동의 상징적 화두가 됐다.
문제는 시의성이다. 당시 서울대 폐지론은 ‘핫 아젠다(논쟁적 의제)’였다. 그러면 20년이 흐른 지금도 서울대 폐지론은 유효한 아젠다인가? 물론 학벌구조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여전히 매우 중요한 문제다. 다만 학벌문제가 유력 대선주자의 교육공약 제1순위에 놓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는다.
2015년 2월 졸업식 날 연세대 캠퍼스에 현수막이 나붙었다. 한 연대생은 이렇게 외쳤다. “연대 나오면 뭐하냐? 백수인데….” 같은해 12월, 서울대 재학생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생존을 결정하는 건 전두엽이 아닌 수저 색깔”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좋은 머리와 학벌이 ‘금수저’를 못 당한다는 절규였다.
그리고 2016년 4월, 학벌문제를 제기해온 사회단체 ‘학벌없는세상’이 자진 해산했다. 이 단체는 “학벌사회가 해체되어서가 아니라 그 양상이 변했다. 자본의 독점이 더 지배적인 지금은 학벌이 권력을 보장하기는커녕 가끔은 학벌조차 실패하고 있다”고 해산 배경을 밝혔다.
정말 학벌문제가 최우선 과제인가? 앞서 든 사례들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징후’들이다. 작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 추계: 2015~2065년’ 자료를 보자. 대학에 진학하는 만18세 인구가 2015년 66만 명에서 2020년 51만 명으로 급감한다. 학벌문제가 차츰 완화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수치다.
학벌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이미 해결됐다는 게 아니다. 대선주자라면 보다 차별화된 구체적 콘텐츠와 미래전략을 우선순위 교육공약으로 내놔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은 어때야 할지에 관한 대선주자의 견해와 철학을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인공지능(AI)·로봇과 함께 살아갈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배움의 형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그들에게 필요한 지식의 반감기는 어느 정도일지 등등. 묻고 싶은 게 많다.
여기에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콕 집어 말하면 투자 의지다. 교육공약이 서울대 폐지론 같은 ‘제도 손질’ 류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잘 뜯어고치면 돈 들이지 않고 지지도를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은연중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역대 정부가 공약한 ‘고등교육 재정 국내총생산(GDP) 대비 1% 확충’은 여태껏 달성 못했다. 그러면 안 된다. 교육은 공짜가 아니다. 투자가 따라야 한다. 서울대 폐지 주장보다는 다른 국공립대에 지속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의 합의·실행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미래에 대비하지 않는 정책은 무용(無用)하며 투자 없는 교육은 허상이다. ‘빅 퀘스천’을 고민하지 않고 ‘빅 픽처’를 그리지 않는 교육정책이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까. 미래 콘텐츠와 투자 실행력을 고루 갖춘 대선주자들의 교육공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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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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