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과 같은 혐의로 제소
EU·대만서도 '특허 남용' 조사
공정위 제재 '적극 대응' 퀄컴, 국내외 '실력파 로펌' 선임
예산에 발목 잡힌 공정위, 도움받을 로펌도 찾지못해
[ 황정수 기자 ]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큰 실수 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삼성전자 LG전자가 중국에서 우리와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다.”
통신칩 특허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공정위로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조300억원)을 부과받은 퀄컴은 2014년 8월부터 약 2년4개월 동안 지속된 조사·제재 기간 내내 끈질기게 공정위를 회유·압박했다. “사상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하다가도 “한국 공정위를 보고 배운 중국 경쟁당국이 한국 대기업에 똑같은 혐의를 들이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경고하기도 했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퀄컴이 ‘한국 정부가 우리를 제재할 게 아니라 한국 기업에 우리의 사업구조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할 때는 퀄컴이 ‘큰 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한국 공정위 따라 한 미국 FTC
퀄컴이 끈질기게 한국 공정위와 싸운 건 이유가 있다. 퀄컴의 사업모델을 정조준한 공정위의 제재가 확정되면 미국 유럽연합(EU) 대만 등 각국 경쟁당국이 똑같은 혐의를 적용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퀄컴의 우려는 한 달도 안 돼 현실이 됐다. 지난 17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한국 공정위 제재와 비슷한 혐의를 들어 퀄컴을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FTC는 퀄컴이 이동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통신칩셋인 베이스밴드프로세서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휴대폰업체들을 압박하고 경쟁사를 몰아냈다고 지적했다. 외신을 보면 퀄컴은 통신칩셋 공급량을 무기로 휴대폰회사에 불합리한 계약 체결을 강요하고 애플에 다른 통신칩셋업체 제품을 쓰지 말 것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 공정위가 제재 근거로 삼은 △통신칩셋 공급을 무기로 휴대폰사에 부당한 계약 체결 강요 △통신칩셋 경쟁사를 몰아내기 위해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를 주지 않은 정책 △특허 끼워팔기와 거래 상대방 특허 무상 사용 등 세 가지 혐의와 상당히 비슷하다. 이 같은 시정명령이 법원에서 최종 확정되면 퀄컴은 휴대폰 가격의 5%를 특허 로열티로 받는 사업구조를 이어가기 힘들어진다.
◆소비자 소송에도 직면
퀄컴의 특허 남용을 조사 중인 대만 EU 경쟁당국도 한국 공정위의 제재 혐의를 벤치마크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 관계자는 “각국 경쟁당국이 조사 내용에 대해선 비밀을 지키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도 “공정위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시정명령 내용을 파악한 뒤 중요한 참고 사항으로 조사에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퀄컴은 ‘사면초가’ 상황이다. 소비자 소송에도 직면했다. 19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10여명이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퀄컴의 반독점법 위반에 따른 피해를 보상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퀄컴이 특허권을 남용해 자사 통신칩셋을 사용하는 기기에 과다하고 부당한 로열티를 매겨, 소비자가 더 높은 비용을 썼다는 주장이다.
◆공정위 대응 예산은 쥐꼬리
퀄컴은 공정위 의결서를 받는 대로 서울고등법원에 시정명령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행정소송을 할 예정이다. 승소를 위해 퀄컴은 국내 유명 로펌은 물론 세계적으로 실력이 인정된 해외 로펌도 선임해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도 대응에 들어갔지만 ‘쥐꼬리 예산’ 때문에 운신 폭이 제한적이다. 공정위 송무 규정에 따르면 심급별 변호사 수임료가 최대 1억원을 초과할 수 없어서다. 퀄컴에 대응할 만한 대형 로펌 선임은커녕 공정위를 도와줄 중소형 로펌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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