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빠진 트럼플레이션…가파른 금리상승 없을 것"..
현대제철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
1조4300억 몰려 '사상최대'
LG유플러스·이마트도 '흥행'
투자자들, 금리 안정에 '자신감'
[ 서기열 / 김진성 기자 ] 올 들어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위해 벌인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잇따라 1조원 이상의 뭉칫돈을 끌어모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플레이션(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이 야기하는 물가상승)’이 당초 예상보다 강도가 약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투자자들이 금리 안정에 베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조원 이상 돈 몰리는 회사채
1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신용등급 AA)가 오는 25일 2000억원어치의 공모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전날 한 수요예측에 총 1조8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경쟁률은 5.4 대 1로 집계됐다.
하루 전에 시행한 현대제철(AA) 수요예측(3000억원 모집)에는 1조4300억원의 투자금이 몰려 2012년 수요예측 제도 도입 후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올 들어 처음으로 진행된 지난 3일 이마트(AA+) 수요예측(3000억원 모집)에도 1조9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올 들어 11차례 이뤄진 회사채 수요예측 가운데 9차례는 모집 금액보다 2~5배의 수요를 끌어모았다. 그중 세 차례에는 1조원 이상의 돈이 몰렸다.
올 들어 한 달도 안 돼 3건의 수요예측에 1조원 넘는 투자금이 몰린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회사채 수요예측에 1조원 넘는 돈이 몰린 사례는 2012년 수요예측 제도 시행 이후 작년 말까지 6년 동안 10건에 불과하다.
금리가 중장기적으로 안정세를 나타낼 것이란 전망에 투자대상이 장기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주까지는 3년물 등 단기물에 매수 주문이 집중됐다. CJ헬로비전이 내놓은 5년물은 300억원 모집에 100억원어치 미매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현대제철 7년물(발행액 500억원)에 1800억원, LG유플러스 7년물(발행액 500억원)에 2100억원이 몰렸다. 중장기적으로 금리 안정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다.
◆“미 금리상승 가능성 크지 않아”
이 같은 회사채 흥행 행진은 작년 4분기와 같은 가파른 금리상승세가 더 이상 이어지기 어렵다는 판단을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강력한 재정정책을 집행할 것이란 기대는 지난해 말 시중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렸으나 올 들어 분위기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트럼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면서 금리가 추가적인 상승동력을 잃었다”며 “트럼프 취임 후 구체적인 재정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금리는 지루한 박스권에 갇힐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트럼프 당선 이후 오르기 시작해 지난해 11월25일 연 1.811%를 찍은 뒤 지난 18일 연 1.649%까지 0.162%포인트 하락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금리를 두세 차례 올리더라도 국내 금리는 2분기에 정점을 찍은 뒤 3분기 이후에는 1분기 수준까지 완만하게 내려올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를 감안해 기관들이 자금 여력이 있는 연초에 보다 많은 회사채 물량을 담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 회사채 발행금리가 지난해 9월보다 높은 수준인 데다 올해 AA급 이상 우량 회사채 물량이 지난해보다 적어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우량 회사채를 적극적으로 매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기열/김진성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