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수주 계약금 10%, 매출 아니라 부채 될 수도

입력 2017-01-19 18:28
수정 2017-01-20 09:08
IFRS15 신수 익기준 2018년 시행…기업회계 대혼란

100만원짜리 TV 수출 때 AS 추가 비용 2만원 생기면
당해 연도 매출은 98만원

전자·자동차·건설·조선 등 대부분 기업 매출 단기하락


[ 이유정 / 이지훈 기자 ] 신수익기준서 도입과 관련해 가장 큰 우려는 기업과 회계업계 정부 모두 파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건설 조선 자동차업체들은 그나마 영향 분석에 착수하기라도 했지만 다른 업종은 논의조차 없다. 하지만 내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 15가 전면 도입될 경우 기업들의 재무구조와 수익성은 단기적으로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고, 회계 처리에도 큰 혼선이 빚어질 전망이다.


매출 기준 어떻게 달라지나

신수익기준서는 제품·용역을 판매한 뒤 재무제표를 만들 때 5단계 수익인식모형(계약식별→수행의무식별→거래가격산정→거래가격을 수행의무에 배분→수행의무 이행 시 수익인식)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제품을 판매한 가격에서 고객에게 추가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없는 부분만 떼어내 매출로 잡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나중에 단계별로 매출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전자제품 및 자동차 등의 경우 ‘품질보증기간’이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법적으로 제공해야 하거나 동종업계가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수준의 보증은 문제가 없지만 마케팅 등을 위해 추가로 제공하는 보증은 바로 매출로 잡을 수 없다는 게 신수익기준서의 요구사항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만원짜리 TV를 파는 경우 지금은 품질보증기간에 관계없이 100만원 전부를 판매 시점에 매출로 잡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품질보증기간이 법적으로 요구하는 수준(확신보증)보다 긴지 등을 따져서 넘치는 부분(서비스보증)은 매출에서 빼야 한다. 해당 기업의 서비스보증 부분이 판매가의 2% 정도라고 판단하면 2%에 해당하는 2만원은 빼고 98만원만 매출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나머지 2만원은 서비스보증 부채로 잡고, 보증 의무가 끝날 때까지 단계적으로 매출로 잡을 수 있다.

노상호 삼정KPMG 상무는 “보증기간 중 어디까지를 확신보증으로 볼 수 있을지에 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며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요구기간을 넘으면 서비스보증으로 볼지, 동종업계 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면 서비스보증으로 볼지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쇄적 부실회계 논란 불거질 수도

수주업계에서는 제5단계 모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신수익기준서는 주문 제작하는 자산 등을 진행률 방식으로 회계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산 등의 대체 용도가 없고, 지금까지 업무수행을 완료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금지급청구권을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조선업체는 전체적인 수주계약이, 건설업체는 선분양아파트 사업 관련 계약에서 불확실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업계 계약 관행과 건설·조선업황 부진 등을 감안하면 지급청구권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진행률 사용이 어려워지면 단기적으로 매출은 급감하고 부채는 증가하게 돼 증권시장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1억달러에 선박을 수주한 후 1000만달러 정도를 계약금으로 미리 받고 공사를 10% 진행했다면 지금은 당해연도에 1000만달러를 매출로 잡는다.

하지만 진행률 방식을 적용하지 못하면 1000만달러가 매출에서 빠질 뿐 아니라 선수금으로 분류돼 부채가 그만큼 늘어난다. 줄어든 매출과 늘어난 부채는 선박을 완성해 인도하는 시점에 반영돼 나중에 거꾸로 ‘어닝서프라이즈’가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신수익기준서가 전자·자동차나 수주업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제품·용역을 고객에게 팔아 수익을 내는 모든 상장사는 당장 내년부터 달라진 기준에 따라 회계 처리를 해야 한다. 기준 변경에 따른 이슈와 논란도 각 업종, 개별 계약에 따라 모두 다르다.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수익 인식과 관련해 산업별로 140여개의 꼭지를 뽑아 연구 및 논의를 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준비 상황은 너무 더디다”며 “기업들이 정밀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잘못된 회계처리로 인해 심각한 소송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이지훈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