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발 '총장직선제' 부활…국립대로 번지나

입력 2017-01-18 18:29
수정 2017-01-19 07:34
제주대 직선제 도입 논의중…총장 공석인 대학으로 확산 조짐

1987년 민주화 이후 도입
학문의 전당 정치판 변질
1990년대 들어 대부분 간선제로
주요대학 중 부산대만 직선제

이사회 기능 못한 탓이지만…
해외선 외부 총장 영입하는데
순혈주의 묶여 경쟁 약화 우려


[ 박동휘 / 성수영 기자 ] 이화여대가 27년 만에 총장 직선제를 부활시키기로 하자 대학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먼저 국립대로 불길이 번질 태세다. 총장 선출 방식을 논의 중인 제주대(국립)가 이화여대의 영향을 받아 직선제 도입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는 전국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대학이다. 재단 비리 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지방 중소 사립대들도 직선제 요구에 휩싸였다.

◆국립대 직선제 ‘봉인’ 풀리나

제주대 관계자는 18일 총장 선출 방식과 관련해 “다른 대학 상황이나 시국 등을 고려해 어느 안을 채택할지 결정할 예정인데 이화여대가 직선제를 결정한 만큼 직선제 안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대가 직선제로 최종 결론 내리면 다른 국립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국 국립대 가운데 총장 직선제를 시행하는 곳은 부산대뿐이다. 부산대는 2015년 8월 현직 교수가 ‘총장 직선제 폐지 불가’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진통을 겪은 끝에 직선제를 택했다.

대학가에서는 국립대 직선제의 ‘봉인’이 풀릴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도입된 국립대 총장 직선제를 없애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교수들 간 선거운동으로 학문의 전당이 정치판으로 변질되는 등 병폐가 많았기 때문이다. 직선제를 없애는 곳에는 ‘구조개혁 중점 국립대학(부실 국립대)’ 선정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유인책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이화여대의 직선제 결정에다 청와대가 일부 국립대 총장 임명 과정에서 ‘사상 검증’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상당수 국립대가 직선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졌다. 경북대는 청와대 입맛에 맞는 2순위 후보가 총장에 임명됐다며 교수와 학생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총장 임용 취소 소송을 냈다. 공주대 광주교대 전주교대 방송통신대도 교육부의 임명제청 거부로 수개월째 총장 자리가 비어있다.

◆‘정치판’ 대학, 글로벌 경쟁 뒤처질라

사립대들도 직선제 열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화여대가 직선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교수 외에 재학생에게도 투표권을 주기로 한 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화여대 이사회는 교수와 학생의 투표권 비중을 각각 82.6%, 5%로 하기로 했다. 교직원(9.9%)과 동창(2.5%)에게도 투표권을 주기로 했다. 총학생회는 이에 반발해 교수와 학생, 직원의 투표권 반영 비율을 동등하게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모든 교수에게 투표권을 주는 직선제도 캠퍼스를 포퓰리즘 바람에 휩쓸리게 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마당에 학생들까지 가세하면 혼란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요 사립대는 심각한 재정난에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구조조정으로 구성원 간 갈등이 커진 상태다. 이화여대처럼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 직선제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단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거나 재단의 인사 전횡에 반발하고 있는 지방 중소 사립대들도 마찬가지다. 경기 오산에 있는 한신대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 총학생회는 “사립대학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대학 구성원의 의견은 무시한 채 대학이 독단적인 운영을 일삼았기 때문”이라며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학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역풍을 맞고 있다면서도 총장 직선제가 불러올 폐해를 우려하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학도 글로벌 경쟁을 피할 수 없고 외부 인재도 적극 영입해야 한다”며 “직선제는 순혈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동휘/성수영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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